• 검색

②장사꾼 故 김정태의 ‘국민+주택’ 합병

  • 2014.05.12(월) 15:39

상전을 ‘관(官)→주주’, 은행을 ‘기관→회사’로 부른 꿈
지배구조 혼란에 무너진 절반의 승리가 아쉬운 이유?
[우리은행 민영화와 솔로몬의 지혜]②


우리나라 은행의 합병 역사는 이렇게 한빛은행으로부터 시작했다. 외환위기에 따른 사실상 관(官)에 의한 합병은 애벌레의 몸집을 빠르게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커진 몸집만큼 성숙한 경쟁력을 기대했었다. 그 목표는 지금까지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여전히 한빛은행의 허물 벗기는 진행형이고, 우리은행 민영화는 어른벌레가 되기 위한 그 마지막 퍼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노림수가 모두 허사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국민 세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것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은행들을 긴장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마중물로는 충분했다. 한빛은행 이후 이어진 은행 간 합병이 대체로 은행 경영진의 자발성에 의해 이뤄진 것을 보면 그렇다.

이 과정에 故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장사꾼 기질이 빛을 발한다. 김 행장은 외환위기 직후 증권맨에서 뱅커로 갈아타면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1998년 주택은행장에 오르면서 “월급 대신 스톡옵션을 받겠다”는 쇼 아닌 쇼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충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당시의 주주 자본주의 흐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김 행장은 주택은행장 3년의 마지막 목표로 미국 상장을 추진했다. 그러기 위해 주택은행의 영어 이름 먼저 바꿔버렸다. 동시에 연임의 스케줄로는 옛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선택했다. 그것이 외국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 2000년 10월 3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주택은행의 뉴욕증시 상장식에서 김정태 행장(왼쪽)이 직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주택은행의 뉴욕 상장을 기념한 포스터에는 탤런트 김태희 씨의 데뷔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합병은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시너지를 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정설도 무시하며, 집요하게 ‘소매+소매’라는 ‘국민+주택’을 성사시킨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대동은행+장기신용은행)과 주택(+동남은행)의 많은 영역이 겹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벌면 된다’는 논리로 합병 대세론을 끌고 갔다.

은행 경영진의 자발성에 의한 국내 은행 간 합병의 첫 사례다. 은행장 김정태의 장사꾼 기질과 뚝심을 분명히 보여줬다. 당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중재로 이뤄진 김상훈 국민은행장과의 합병 담판 일화는 유명하다. 금감원 부원장 출신의 김상훈 행장과 재무 관료 출신의 이근영 금감위원장, 사실상 2대 1의 게임에서 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승리를 따냈다.

그의 이런 추진력은 은행 산업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당시 우리나라 은행은 모두 ‘공적 기관’이었다. 그는 이를 ‘주식회사’로 부르길 원했다. 당연히 관(官)에 의한 지배가 강했던 은행을 ‘주주에 의한 지배’로 돌려놓고자 했던 꿈이다. 지금은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상황이지만, 당시 경제사(史)의 흐름을 탈 줄 알았던 그는 천생 장사꾼이었다.

지금 이 합병의 결과를 말하라면 솔직히 좋은 평가는 어렵다. 김 행장은 당시 합병의 핵심 키워드로 ‘리딩’을 제시했었다. 이 단어로 투자자들의 환심을 분명히 샀다. 그렇게 ‘소매+소매’의 부담을 희석해나갔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그가 합병 국민은행을 조금 더 지휘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 2000년 12월 22일,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합병은행명을 비롯한 기본합의안은 이듬해 4월 11일 도출됐다. 그러나 합병 은행장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평행선. 결과는 뚝심의 장사꾼 김정태 행장이 승리했다(2001년 7월 26일).

NICE신용평가의 이혁준 평가전문위원은 “2001년 합병 이전 두 은행의 수익성(ROA)과 생산 효율성 지표는 은행업계 평균보다 우월했지만, 2003년부턴 전반적으로 평균을 밑돌기 시작한다”며 “합병 후 중복비용 절감 등 수익성과 생산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미흡했던 결과로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많이 제기하는 합병 국민은행의 채널(옛 국민과 주택의 갈등) 문제는 당시에도 충분히 예견했었다. 김정태 행장은 ‘합병 후 10년 간 양 은행 출신 중에선 임원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말로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었다. 김 행장이 2004년 물러나기 1년여 전부터 합병 국민은행은 혼란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물러나고 나선 더 했다.

김정태는 모든 걸 잘했고, 이후 경영자는 모두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지배구조의 혼란은 조직이 하나의 목표로 달릴 기회를 사실상 빼앗았다는 차원의 얘기다. 김정태 행장 시절이라고 채널 간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지배구조의 안정은 이의 표면화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고, 불안정한 지배구조는 이의 발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게 합병 국민의 ‘리딩’ 지위는 쪼그라들었다. 몇 차례의 경영 전략상 실패까지 이어지면서 지금 국민은행은 활로 모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옛 한빛은행과 우리은행, 합병 국민은행이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지금처럼 추락한 것은 개평 뜯기듯 내어준 그들의 지휘권 때문은 아닐까?

[글 싣는 순서]
①불완전변태 한빛은행의 탄생
②장사꾼 故 김정태의 ‘국민+주택’ 합병
③김승유의 서울•외환은행 주워 먹기
④라응찬의 세력 바둑 조흥과 LG카드
⑤한국의 CA 꿈꾸는 농협의 민간 체험
⑥M&A로 만들어진 한국 신 Big4 금융 
⑦재미없어진 마지막 승부 우리은행 매각
⑧금산분리 규제에 덧씌워진 오너리스크
⑨虛虛實實 희망수량 매각 방식의 승자는?
⑩경영권 매각을 배제한 어떤 것도 꼼수다<끝>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