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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불완전변태 한빛은행의 탄생

  • 2014.05.12(월) 11:22

외세에 의한 역사적 사명? 은행 구조조정•대형화
투입 세금 날린 우리금융 해체는 官 지배의 실패
[우리은행 민영화와 솔로몬의 지혜]①

인생도 삼세판이다. 웬만하면 세 번 중 한번은 찬스가 있다는데, 우리은행은 그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 벌써 햇수로 5년이다. 5년째 끝이 보이지 않는 ‘주인 찾기’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피로감마저 든다. 다시 네 번째 닻을 올렸다. 지금은 게임의 룰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큰 가닥은 잡았으나, 의문도 많다.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


역사에 가정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에 왈가왈부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역사는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일이 그렇게 돌아갔다면 이유는 분명히 그 안에 있다.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의 것이지만, 이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안다면 후세는 실패하지 않는 법을 익힌다. 그것이 역사다. 그렇다면 우리은행 민영화의 성공 해법은 지난 금융 역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은행의 전신 한빛은행. ‘한빛’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한자 이름은 아니지만, 한글 ‘한’도 지닌 뜻이 워낙 많아서다. 하나의 빛, 큰 빛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멋있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면, 꺼져가는 두 개의 불씨를 모아 하나로 되살려보고자 했던 당시의 상황에 제일 잘 맞았던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빛은행은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쳐 만들었다. 그것도 강제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의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돈을 빌려 준 은행들은 궁지로 몰렸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당시의 대형 은행들 이름이다. 이를 역사 속으로 묻는 과정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 영예(?)를 안고 태어난 것이 한빛은행이다. 1999년 1월의 일이다.

▲ 1998년 7월 3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합병에 최종 합의하고 웃고 있는 배찬병(좌) 당시 상업은행장과 이관우 한일은행장.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의 충격 속에 정부는 물론 가계와 산업 등 나라 전체의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지금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당시 처방이 잘못됐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땐 그런 의문을 품을 겨를이 없었다. 일부 음모론적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생존 본능은 그저 무릎을 꿇는 길 외의 다른 방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IMF를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인조가 청태종 앞에서 벌인 삼배구두례(三拜九頭禮)의 치욕에 빗대 신(新) 정축국치(丁丑國恥)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는 1910년 을사늑약의 경술국치 치욕을 되새기며 벌인 경건한 독립운동이었다. 21세기를 앞두고 설렐 시기에 우리는, 금융시장 복원을 위해 한빛은행을 탄생시켰다.

한일과 상업은행은 외환위기 충격 속에 스스로 살아갈 방법인 외자 유치를 추진했다. 이것이 여의치 않자,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중재로 합병하기에 이른다. 두 은행의 합병은 ‘국내 최대 규모 총자산 105조 원, 세계 100위권 은행 첫 진입’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 1998년 12월 21일, 상업·한일은행 합병추진위원회를 방문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가운데)이 박영철 합병추진위원장(우)과 악수하고 있다. 한빛은행장에는 이 위원장의 권유로 김진만 당시 한미은행장(좌)이 취임했다.

지금은 외환은행 한 곳의 2013년 말 현재 실질총자산(평잔)도 100조 원을 넘는다. 합병 국민은행 260조 원, 합병 우리은행 230조 원, 합병 신한은행 227조 원, 합병 하나은행 155조 원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5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자산 100조 원을 넘는 공룡 은행의 탄생이라는 한국판 은행 빅뱅의 신호탄은 그렇게 쏘아 올려졌다.

국민의 세금을 써야 하는 부담은 있었다. 잘만하면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을 견인하고 국내 은행의 체질을 개선할 묘수로서 기대도 모았다. 한빛은행은 그래서 나라의 선택을 받은 은행이었다. 지금 결과적으로 한빛은행은 이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한빛은행은 연이어 옛 평화은행과 경남•광주은행, 우리종금(옛 하나로종금), 옛 LG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을 붙이며 허물 벗기를 계속했다. 간판도 우리은행으로 바꿔 달았다. 한빛은행은 관성대로 부실 금융회사들을 잇달아 붙여가며 애벌레가 번데기도 거치지 않고 몸집만 키워왔다. 관(官)의 손에 의해.

▲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가 2001년 4월 2일 서울시 회현동 한빛은행 본점에서 출범했다. 윤병철 초대 회장(가운데)이 지주회사 깃발을 흔들고 있다.
몸집이 커졌다고 자생력이 길러진 것은 아니었다. 애벌레인 한빛은행 때와 차이가 없었다. 2001년 3월 현재 총 투입한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은 12조 8000억 원. 이후 회수한 자금은 5조 8000억 원이다. 10년이 넘는 세월의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만 회수하는 데도 7조 원이 더 필요하다.

가장 최근인 우리금융지주 4차 블록세일에서 정부가 회수한 금액은 1조 1610억 원. 2010년 4월 9일, 주당 1만 6000원으로 약 9%의 지분을 판 결과다. 지난 1월 2일 우리금융지주의 주가 1만 3750원은 올해 최고가다. 현재 거래정지 상태인 주가는 1만 1650원이다. 4년 전 블록세일 때보다도 못하다.

지금 계산으로 원금 회수는 애초에 텄다. 우리은행은 이 시간까지도 눈먼 국민 세금을 받도록 해준 정치권과 관(官)에 진 무형의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대체로 그 빚은 현물(우리금융의 고위직 자리)로 갚아왔다. 딱 그만큼이, 우리금융에 들어갔으나 회수하지 못하는 국민 세금일지도 모른다.


[글 싣는 순서]
①불완전변태 한빛은행의 탄생
②장사꾼 故 김정태의 ‘국민+주택’ 합병
③김승유의 서울•외환은행 주워 먹기
④라응찬의 세력 바둑 조흥과 LG카드
⑤한국의 CA 꿈꾸는 농협의 민간 체험
⑥M&A로 만들어진 한국 신 Big4 금융 
⑦재미없어진 마지막 승부 우리은행 매각
⑧금산분리 규제에 덧씌워진 오너리스크
⑨虛虛實實 희망수량 매각 방식의 승자는?
⑩경영권 매각을 배제한 어떤 것도 꼼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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