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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금산분리 규제에 덧씌워진 오너리스크

  • 2014.05.15(목) 14:57

경영 의지•은행산업 경쟁구도 다 좋은데…
“오너 교보의 은행 지배는 위험하다” 논란
[우리은행 민영화와 솔로몬의 지혜]⑧


KB금융 이외에 다른 은행그룹들은 우리은행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신한과 하나 모두 중복 문제로 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다. 솔직히 KB금융도 그리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중복과 이에 따른 직원들의 반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경영진의 ‘리딩’을 위한 매우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면, 그저 단순한 관심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우리은행을 인수할 곳이 마땅치 않다. 스스로 의수 의사를 밝힌 교보생명그룹을 제외하면. 교보생명은 보험업계에서 빅3 구도를 형성하고는 있지만, 격차는 꽤 벌어진 상태다. 그저 열심히 뛴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별수 없이 그룹의 성장을 위해선 M&A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의 이런 공격적인 행보는 경쟁 보험사들이 금산분리에 묶여 판에 끼어들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을 터다. 빅3를 형성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일반적인 투자 용도 말고는 은행 지분을 사들이기 어렵다. 대신 교보생명은 교보문고가 있긴 하지만, 산업자본이 아닌 사실상 금융전업그룹이다. 금산분리에서 자유롭다.

우리은행을 인수한다면 실익은 어마어마하다. 교보생명과 교보증권을 포함해 이번 매물의 자산을 합치면 318조 원 정도다. 빅4인 신한(317조 원), KB(301조 원), 하나(297조 원), 농협(290조 원)을 미세하게 따돌리고 금융그룹 1위로 올라설 수도 있다. 보험업계에서 빅3 이탈 위협까지 있는 상황에서 단숨에 전체 금융업계 1위로 뛰어오를 기회다.


교보생명이 이런 기회를 마다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의아한 일일 수도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더없이 좋다. 총자산 중 은행 비중이 74%, 비은행 비중은 26%가 된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비교적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춘다. 금융그룹 중 포트폴리오가 가장 좋다는 신한금융은 은행 69%, 비은행 31%다.

이 경우 대형 금융그룹들과 대등한 경쟁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금융 산업의 대형화와 함께 중요한 것이 경쟁이다. 경쟁구도가 적절히 만들어져야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KB국민은행의 강한 의지로 우리은행은 인수한다면 오히려 이 조건과는 조금 멀어진다. 1강-3중 체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보생명이 우리은행을 인수하면 곧바로 5강 체제가 구축된다. 차이도 거의 없다. 한두 해만 삐끗해도 순위가 뒤집힐 정도의 차이다. 당연히 교보-신한-KB-하나-농협의 경쟁 긴장도는 높아지고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는 기대가 많다.

교보생명도 KB금융과 마찬가지로 인수자금 여력에선 크게 문제가 없다. 현재 교보생명이 보험업법상 자체적으로 투자 가능한 금액은 약 1조 3000억 원 정도다. 우리은행 인수금액을 약 5조 원 정도로 보면, 교보생명이 확보할 지분은 약 15%.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를 위해선 전략적 투자자 확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금융산업의 모습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검토하는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큰 덩어리인 우리은행을 한두 기관이 사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다수 투자자에게 일시에 분산매각 하는 데 주로 활용하는 이 방법을 써 보겠다는 것이다.


연구 용역을 맡은 금융연구원은 이 방식의 장점으로 ‘민영화 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 투자자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투자자를 동시에 수용해 한꺼번에 입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우리은행에 대한 공적 통제가 더는 없다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형성되면 충분한 투자수요 유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타냈다.

하지만 금융계 안팎에선 이미 인수 의사를 밝힌 교보생명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전략적 투자자의 지위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은 방안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정부 안에서도 ‘교보생명의 오너십으로 은행을 경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은 공공연히 들린다.

우리나라에선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 논의가 나올 때마다 금산분리 문제가 불거졌다. ‘책임 있는 지배주주가 소신껏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금산분리 완화 주장의 핵심이다. 논쟁의 진정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는 전 세계 금융위기로 한풀 꺾인 상태다.

그동안 오너 경영인 문제는 저축은행에서 많이 발생했다. 오너가 저축은행을 사금고처럼 경영하면서 일으킨 문제다. 정부와 금융당국으로선 예나 지금이나 최대 골칫거리다. 감시망을 촘촘히 하고 개인이 저축은행을 살 때는 적격성 심사를 강하게 보고 있긴 하다. 그러나 ‘열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잡지 못한다’는 말처럼 오너의 사금고화 문제는 항상 일이 터져야 불거지는 속성도 보인다.

그래서 정부의 희망수량 매각 방식은 ‘오너 경영인에게 은행 경영을 맡길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교보가 지배력을 가질 만큼 우리은행 지분을 사지 못하도록 하는 게임의 룰’이라는 의혹도 받는다. 우리은행이라는 큰 덩어리를 가능한 한 많이 파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당근이나 앞으로 잘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이 적다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입맛을 다실 가능성도 적다.

[글 싣는 순서]
①불완전변태 한빛은행의 탄생
②장사꾼 故 김정태의 ‘국민+주택’ 합병
③김승유의 서울•외환은행 주워 먹기
④라응찬의 세력 바둑 조흥과 LG카드
⑤한국의 CA 꿈꾸는 농협의 민간 체험
⑥M&A로 만들어진 한국 신 Big4 금융
⑦재미없어진 마지막 승부 우리은행 매각
⑧금산분리 규제에 덧씌워진 오너리스크
⑨虛虛實實 희망수량 매각 방식의 승자는?
⑩경영권 매각을 배제한 어떤 것도 꼼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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