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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맞을 매? 이참에 사무환경 싹 바꾸는 정태영 사장

  • 2014.09.01(월) 10:21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의 행보는 늘 파격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금융 부문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브랜드 가치 우선의 경영 철학에다, 강력한 오너십으로 항상 ‘힘’을 동반하고 있어서다. 이런 그가 이번엔 계열 금융회사의 사무 환경을 싹 바꾼다.

보통 회사 직원의 책상 옆에 늘 따라다니는 데스크톱 PC나 노트북이 사라진다. 일하는 책상엔 모니터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개인에게 별도로 PC를 제공하던 방식을 데스크톱 가상화(VDI: Virtual Desktop Infrastructure) 방식으로 바꾼다는 얘기다. 몇 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조명받는 기업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클라우드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초기 단계다. 이런 시스템을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 등 현대차그룹 금융 계열사 전체에 적용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직원만 1만 3000여 명이다. 본사는 물론 각 지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한다. 이미 적용한 전산센터 직원 2000여 명처럼 정보통신기술(IT)이나 PC 사용에 능숙한 직원들도 아니다. PC 사용 숙련도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PC 환경으로 바뀌면 직원들의 혼란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클라우드 방식이 대세라곤 하지만, PC 환경이 다소 느려 불만도 있다. 이런 부담을 기꺼이 떠안고 정 사장은 밀어붙였다.


◊ 사실상 타의로 시작한 클라우드

정 사장이 이 문제를 글로벌 기업의 트렌드여서 그냥 따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의보단 타의다. 지난해 3월 농협과 신한은행은 영업점 전체의 전산시스템이 마비됐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금융 전산 보안 강화 종합대책을 내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이때 만든 대책이 금융 전산의 망(網) 분리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으로 업무용 PC와 인터넷 PC를 분리•운영하는 물리적 망 분리를 전제로 한다. 업무용 PC는 인터넷망 접근과 외부 메일을 이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PC의 업무망 접근은 봉쇄된다. 인터넷 PC에서 인터넷과 외부 메일을 이용할 순 있지만, 모든 문서는 읽기만 가능하고 편집은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인터넷 PC에서 문서 편집을 허용하면 중요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이렇게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의 물리적 분리를 의무화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 의무 지침을 지키려면 모든 직원에게 PC를 두 대씩 줘 내부용과 외부용을 구분해 써야 한다. 고객 정보 유출로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 정태영 사장이다. 정보 보안에 어느 때보다 빈틈없이 하고 싶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정 사장은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자’고 결정했다. 갈수록 정보 보안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클라우드 시스템은 보안 측면에서 좀 더 낫다.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직원들도 새 PC 업무 환경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는 빠른 결정을 한 것이다.

◊ 50만 금융 인력 사무환경 대변혁


감독 당국의 가이드라인대로 하면 모든 금융회사는 올해 말까지 전산센터의 망을 분리해야 한다. 본점과 영업점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은행은 내년 말까지, 나머지 금융회사는 2016년 말까지 망 분리를 완료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은 전산센터의 망 분리를 이미 마쳤다. 계열 4개사의 본점과 영업점 모두 올해 말까지 망을 분리하고 내년 1월부턴 클라우드 시스템을 적용한 VDI 환경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감독 당국의 계획대로라면 내후년 말까지 하면 되는 것을 올해 말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정태영 사장이 스타트를 끊으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도 한층 앞당겨질 분위기다. 정부의 망 분리를 통한 정보 보안 강화로 금융회사들은 VDI 방식의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해졌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망 분리를 고민하는 상당수 금융회사가 VDI 방식의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전체 임직원은 대략 27만 명 수준이다. 직원 외로 분류하고 있는 전속 설계사와 운용전문인력, 별정직 직원을 포함하면 5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상당수도 사실상 금융회사의 업무에 참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50만 명의 클라우드 시스템 환경은 이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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