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는 이미 오래전, 본사 건물을 모두 뜯어고치면서 의지를 보였다. 시쳇말로 건물 뼈대 빼고는 다 바꿨다. 카드 디자인이나 홈페이지도 다른 회사와는 많이 다르다. 그들의 표현대로 ‘현대카드다운’ 모습이다. 그들은 TV CF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강하게 어필했다. 여느 카드와는 다른, 오직 하나뿐인 현대카드다.
▲ 현대카드의 남다른 홈페이지 |
팬택도 만만치 않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흠모한다는 스티브 잡스도 하지 못한 엔드리스 메탈링(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 금속테두리)을 완성해 그들의 강한 의지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지위는 삼성이나 LG에 많이 못 미친다. 최근엔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팬택이 먼저 제안했다. 그들의 광고 카피처럼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콜라보레이션은 서로 다른 브랜드가 가진 경쟁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질적인 브랜드 간의 전략적 협업(상호 혁신)으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회사와 제조업체의 다양한 형태의 마케팅 제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현대카드와 팬택처럼 선명하게 목표를 제시한 경우도 없었다. 양사는 이를 ‘라이프스타일 미디어’로 정의했다. 전화하고 모바일게임만 하는 스마트폰이 아닌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새로운 도구다.
서로가 주고받을 실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은 현대카드•캐피탈과 현대•기아차그룹의 마케팅 파워를 활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모바일 카드시장에서의 변화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현대카드는 새로운 스마트폰의 기획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다.
현대•기아차그룹에는 삼성•LG그룹과 달리 통신수단 제조 부문이 없다. 통신기술을 활용한 금융과 각종 제조물의 융합은 빠르게 일어난다. 이미 정태영 사장은 기아자동차를 이용해 금융과 자동차의 콜라보레이션 실험을 해봤다. 미래 먹거리 영역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이유다. 현대카드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 전체로 봐도 어디 가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경험이 아니다.
▲ 현대카드와 기아자동차가 진행한 콜로보레이션 마이 택시. 경차 '레이'를 기반으로 택시를 이동수단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재해석한 이 디자인은 올해 2월 iF 디자인 어워즈에서 금융회사 중 세계 최초로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
양 사가 같이 만들 전략 스마트폰의 UI(User interface)와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디자인을 현대카드가 맡는다는 합의는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살아생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면서 집착했던 내용을 보면 UI•UX•GUI 인터페이스 디자인 영역이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하드웨어 스펙보단 편의성과 사용자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다.
팬택 측이 이번 제휴와 관련해 “기존 스마트폰 시장이 과도한 스펙 경쟁과 차별화하지 않은 디자인, 가격 경쟁에 빠져 있다”고 설명한 대목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꼭 필요한 기능과 새로운 디자인을 갖춘 합리적 가격의 스마트폰을 선보이고 싶다”는 말로 현대카드와의 협업에 기대하는 바를 분명히 했다.
팬택은 지금도 스마트폰 디자인 영역에서 강점을 인정받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삼성이 팬택 디자인팀과 만나면…’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팬택이 이질적인 금융영역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은 ‘사용자 환경’이다. 현대카드가 가진 엄청난 규모의 소비자 성향 빅데이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한 브랜드 이미지 강화차원을 넘어 감성을 자극해 구매현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이 반드시 시장 반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범상규 건국대 교수의 글에서)’
지금까지 정태영 사장은 우리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었다. 우리나라 많은 금융회사 중에서 현대카드만이 유일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있다. 애플 광으로 알려진 정 사장은 ‘디스플레이, 모바일, 자동차 등 세탁기와 냉장고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구글(2013년 1월 9일 트위에서)’이라는 표현으로 구글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콜라보레이션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걸음을 뗐다.
내년 상반기엔 정태영 사장의 메인폰이 팬택의 전략폰으로 바뀔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