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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또 KT ENS? 또 商社의 문제다

  • 2014.11.07(금) 10:09

히든 챔피언 모뉴엘에 가려진 한국금융의 민낯③

올 초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사건과 이번 모뉴엘 사건에서 함께 등장하는 회사가 하나 있다. KT ENS(옛 KT네트웍스)다. 모뉴엘의 매출채권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점은 2008년부터다. 총판 계약은 2007년에 했다. 최근 관세법 위반으로 구속된 박홍석 씨는 2007년 11월 모뉴엘 대표에 취임했다.

모뉴엘과 KT ENS의 거래도 2008년부터 시작한다. 모뉴엘의 2008년 감사보고서(2009년 6월 10일 접수)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 19, 영업상의 집중에 대한 중요도) 당사는 당기 중 ASI Computer Technologies, Inc.(USA)와 (주)케이티네트웍스에 대한 당사의 당기 매출액과 매출채권이 전체 매출액 및 매출채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94.27%와 97.80%입니다. 또한, 당기 중 BLEUSYS(USA)에 대한 당사의 당기 매입액이 전체 매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71%입니다. 또한, 당기 총자산 중 ASI Computer Technologies, Inc.에 대한 매출채권 19,288백만원과 BLEUSYS에 지급한 선급금 9,999백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1.62%와 26.76%, 총 78.38%입니다. 이처럼 당사의 영업은 ASI Computer Technologies, Inc.와 (주)케이티네트웍스 그리고 BLEUSYS(USA)와의 영업관계에 중요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당사의 재무제표는 이러한 영업관계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작성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ASI 컴퓨터(USA)로 수출된 금액이 전체 매출액의 94.3%이고, 이를 통해 발생시킨 매출채권이 전체 매출채권의 97.8%라는 얘기다. 모뉴엘이라는 회사의 제품이 해외에서 팔리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알린 첫 시발점에 해외에선 ASI 컴퓨터가, 국내에선 KT ENS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모뉴엘 입장에선 KT ENS가 구세주와도 같았을 것이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안 팔리면 소용이 없는데, 모뉴엘 제품이 해외에서 팔리고 있다는 증빙을 KT ENS가 해준 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그건 검찰이 밝힐 일이다.

◊ 사업 다각화한 KT ENS

여기서 KT ENS 측의 얘기를 들어 보자. KT ENS 관계자는 “2007년부터 회사의 사업 다각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이때부터 다른 회사 제품들의 수출대행을 했다. 모뉴엘과는 홈시어터PC 수출 총판 대행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200억 원대에서 시작해 이후 400억 원대까지 늘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도 검찰이 더 파헤쳐야 할 대목이다. 사업 다각화 차원의 총판 계약이라는 KT ENS 측과 모뉴엘을 처음부터 들여다본 관세청은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관세청은 ‘KT ENS가 모뉴엘로부터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받아 수출채권을 발행했고, 해외 유통업체를 알선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0년 감사보고서까진 실명으로 영업 집중도가 언급된다. 여전히 KT ENS와 미국 ASI만 등장한다. 같은 해부터는 여러 은행과 팩토링, 수출환어음 매입 등의 방식으로 여러 은행과 거래를 텄다. 이후 감사보고서에선 영업 집중도 주석이 사라졌다가 2014년 4월 7일 감사보고서에선 매출 거래처 4곳, 매입 거래처 2곳 등 총 6곳을 표시했다.

대신 감사법인은 이들 거래처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KT ENS 측은 “거래처는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모뉴엘과 감사법인은 뭔가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KT ENS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벌인 영역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1986년 한국통신진흥주식회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기본적으론 통신망 관련 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 업무를 해왔다. 그러던 것이 KT네트웍스로 간판을 새로 달고 2007년 사업 다각화 계획이 전면에 부상하면서는 사실상 ‘상사(商社)’의 개념으로 바뀐 셈이다. 물론, KT ENS 측은 "회사의 주 업태인 네트워크 구축과 관련한 장비를 해외에 판매한 것일쁜"이라고 설명한다.

◊ 빠른 성장의 해법인가, 문제의 진원지인가

종합상사의 사전적 정의는 ‘다루는 상품의 수요가 많고 외국 무역과 국내 유통을 영위하는 상사’다. SK네트웍스,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LG상사, 현대종합상사, GS글로벌, 주식회사 한화 등이 모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합상사회사들이다.

▲ 삼성물산은 올해로 설립 76주년을 맞았다. 국내 종합상사 1호로 한국 수출의 견인차 역할과 함께 해외 시장 개척을 주도했다. 사진은 1938년 삼성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신념을 갖고 대구 인교동에 설립한 삼성상회의 모습.

종합상사를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제도도 있다. 기업들의 수출지원을 위해서다. 최근 이 종합무역상사제도는 전문무역상사제도로 탈바꿈했다. 지난 9월 15일 정부는 내수기업의 수출지원을 목표로 전문무역상사 제도(대외무역법)로 확대해 162개 기업을 선정했다. 운용은 한국무역협회가 맡았다.

이 종합상사는 계열사의 여러 제품을 모아 국내•외 판매대행을 한다. 자연스럽게 각종 금융기법을 활용한다. 종합상사에서 무역금융을 모르고는 일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특징으로 종합상사는 그룹 내부의 금융회사 같은 역할도 해왔다. 관세청은 “모뉴엘의 급성장 과정에서 KT ENS가 사실상 모뉴엘의 ‘은행’ 역할을 했다”고 설명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대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보면 이들 종합상사의 역할이 컸다. 말로가 좋지 않은 대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체로 오롯이 제대로 된 제품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이 종합상사를 통해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하고 활용하면서 자금을 융통하다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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