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점에서 금감원장은 차관급으로 본다. 18일 청와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차관급 인사 단행에 금감원장이 포함됐다. 임기 보장에 대한 시비는 없어 보인다. 그렇게 금감원장의 임기를 보장한 법률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오늘 처음 버려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최수현 금감원장의 사퇴는 경질이다.
경질 배경에 대해선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워낙 사건•사고가 잦았다.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신용카드 고객 개인정보 유출, KB금융그룹 경영진 분쟁 사건 등, 모두 사회적 파문이 컸다. 관리•감독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임명권자의 발표가 아닌 보는 사람의 관점이긴 하지만, 크게 어긋나진 않는다.
◯…최수현 금감원장의 경질은 최종구 수석 부원장도 좌불안석이다. 원장 제청권을 가진 금융위원회가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을 차기 원장으로 공식화했다. 행정 절차상 금융위의 임명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순서로 이뤄지지만,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임명제청이 이뤄질 리는 없다.
진 사장은 행시 기수(28회)로 최종구 수석 부원장(25회)보다 세 기수 아래다. 나이도 두 살 적다. 정황상 금감원은 어제 오후에서야 청와대의 원장 경질을 파악한 곳으로 보인다. 오늘도 최수현 원장의 이임식을 오후 3시로 잡았다가 취소하고 5시로 재공지하는 등 연달아 해프닝이 발생했다. 최 수석 부원장도 당혹스럽겠지만,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무원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동반 퇴진은 불가피해 보인다.
인사 태풍에 휘말린 금감원이다. 원장과 수석 부원장이 동반 퇴진하면 수석 부원장 자리도 채워야 한다. 그동안 사례를 보면, 수석 부원장은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러나 관피아 논란으로 여론은 어느 때보다 좋지 않다. 게다가 후임 원장으로 이미 진웅섭 사장이 사실상 앉은 상태다. 원장과 수석을 다시 차지하면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내부 승진 관측이 우세한 이유다. 금감원의 서열은 조영제 부원장, 박영준 부원장 순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어제(17일) 조영제 부원장이 장녀 결혼식 하객 구설에 올랐다. 조 부원장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으나, 앞으로 이 일이 어디로 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무리 오비이락이라지만 참 고약한 시점이다.
게다가 박영준 부원장은 살아있는 권력과의 친분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준 부원장은 본래 금감원 출신이 아니다. 국내 증권사 출신으로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사무소 컨설턴트와 다이와증권 서울지점 고문변호사 경력이 있다. 2008년 6월 금감원 자본시장서비스국장으로 영입된 케이스다.
지난 2007년 17대 대통령(이명박)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당내 경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인연이 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내 경선 패배 후 금감원 진입 시기와도 맞아 들어간다.
◯…최수현 원장의 경질과 금감원의 인사 태풍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KB금융 사외이사들에도 눈길이 다시 쏠리고 있다. 최 원장과 최 수석 부원장이 동반 사퇴한다면 사실상 KB 사태와 관련된 모든 영역이 물러난 셈이다. 이미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회장이 물러났다.
최 수석 부원장은 제재심의위원장으로서 제재심의 경징계 결정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 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제재심의 결정을 뒤집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크게 쟁점이 됐었다. 일부에선 KB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감독 당국의 혼선이 국정감사까지 이어져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KB 사태의 한 축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외이사들에 대한 사퇴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문제를 이유로 한 금융위의 LIG손보 인수 재검토 지시도 부담이거니와, 관련된 모두가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들만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