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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도로아미타불 교보생명

  • 2014.11.19(수) 16:54

교보생명이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말입니다. 어제(18일) 오후 교보생명은 이 문제 결정을 위한 이사회를 열었습니다. 결론은 모호합니다. 참여한다는 것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사회 후 교보생명은 “참여한다”고 했다가 “최종 결정은 경영위원회에 위임했기 때문에 ‘유보’라고 봐야 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오늘 아침 관련 기사를 본 분들은 이 해프닝의 과정을 충분히 봤을 겁니다. 교보 신창재 회장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인수는 하고 싶은데 막는 세력(?)이 있어서입니다. 이 세력을 무시하긴 힘듭니다. 자, 이제부터 그 과정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 의지는 대단합니다. 금융 전업 그룹의 모양을 갖추곤 있지만, 변변친 않습니다. 교보생명만을 더 잘 키워 더 성장한다는 목표도 요원합니다. 우리나라 빅3 생명보험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1위 삼성생명을 따라잡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업계에선 정상적인 상황에서 생명보험 2~3위권이 삼성생명을 제치려면 100년도 더 걸린다고 합니다. 100년 동안 2~3위권은 평균 이상으로 성장하고, 삼성생명은 큰 실수가 몇 차례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습니다.

금융그룹으로서 더 성장하기 위해선 인수•합병(M&A) 밖에 없다는 얘기죠. 실제로 많은 회사의 성장사(成長史)가 그렇기도 합니다. 우리은행이 교보생명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우리나라에서 은행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외국계인 씨티와 SC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하겠다면 모를까, 저축은행 말고는 없습니다.

앞서 표현한 ‘세력’은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금융감독당국입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말합니다. 금융당국은 애초부터 교보생명을 달갑게 보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26일 처음으로 정부가 의중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열린 ‘바람직한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이라는 정책토론회는 ‘정부는 우리은행의 경영권을 매각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건을 팔겠다는 사람의 조건은 있을 수 있지만, 이 조건에 부합하는 케이스가 없었던 거죠.


정부는 이날 ‘우리은행이 계속 주인 없는 조직으로 남길 원한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국자가 이 기사를 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부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래서 본지는 이 정책토론회 이후 꾸준히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해선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해 왔습니다.☞3월 28일, 우리은행 민영화=오너 교보생명 인정의 문제다① ☞5월 12~19일, 우리은행 민영화와 솔로몬의 지혜① ☞10월 6~8일, 국민을 배워야 우리가 산다①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다면 이 정도의 실험과 모험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정부가 제일 껄끄럽게 생각하는 금산분리 문제에서도 교보생명은 자유롭습니다. 대한교육보험 탄생부터 보험을 전업으로 했습니다. 1958년 개띠 해에 태어나 올해로 만 56세의 보험 외길입니다. 이 정도도 끌어안을 자신이 없으면서 금융산업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교보생명을 왜 싫어할까요? 정확히 말하면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처음 가는 길이 싫은 겁니다. 새로 길을 여는 것도 좋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겁니다. IMF 시절이긴 하지만,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캐피탈에 팔았을 때 얼마나 욕을 먹었습니까?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았을 때는 또 어땠고요? 굳이 이런 결정을 지금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정부가 겉으론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유도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사람이니까요. 앞선 정책토론회가 정부가 마련한 ‘게임 룰’을 발표한 자리입니다. 정부로선 욕먹지 않으면서, 정치적 부담이 없고,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특히 인사권)할 수 있는 대형은행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은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하지만 이건 금융산업의 경쟁력, 선진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얘깁니다.


다시 교보생명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틈만 나면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정부의 뻔한 의중을 알고 있기에 여론몰이라도 해야 하는 거죠. 그러나 이 여론전은 실패한 듯합니다. 정부는 뜻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톤이 더 강해졌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고요?

처음에 정부는 아예 성사되지 않을 게임의 룰을 들고 나왔습니다. 교보생명이 경영권 인수전에 참여하든 말든 그 입찰을 무효로 만들면 되죠. 유효경쟁입찰 방식입니다. 두 개 이상의 경쟁이 있어야 유효한 입찰로 인정하는 조건입니다. 정부가 하는 대부분의 입찰에서 적용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경영권 인수와 아닌 경우로 나눠 입찰하는 묘수를 찾았습니다.

교보생명은 분명히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니, 그 그룹만 따로 떼서 입찰하고 경쟁자가 없으면 소위 말하는 ‘나가리’라는 겁니다. 정부의 이런 생각은 대체로 맞아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중국의 안방보험이라는 곳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입니다. 중국의 안방보험이 우리은행의 경영권에 관심을 보이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달갑지 않은 교보생명과 갑자기 튀어나온 중국 자본에 우리은행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겁니다.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에 판 것도 우리 은행을 외국 자본에 헐값으로 넘겼다고 욕먹는 판에 중국이라고? 실제로 안방보험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의 의중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게임이 성사되면 둘 중의 한 곳은 우리은행을 먹겠죠. 나중에라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것을 통해 판을 뒤집을 툴이 정부에 있긴 합니다만, 자칫 이건 더 큰 화근이 될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정부로선 아예 게임판을 엎어 아무도 링에 오르지 않는 것이 편하죠.

이런 툴은 금융당국엔 많습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제도적 또는 법률로 정해진 것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 이런 것은 있습니다. 금융시장을 안고 있는 금융산업에서 감독과 검사권을 쥔 당국은 항상 법보다도 무서운 그 무엇이 있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교보생명이 이사회를 여는 날에도 공공연히 “교보가 드롭(drop)할 것 같다, 입찰에 참여한다고 선언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자들에게 이 말은 ‘이미 다 작업해놨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이제, 어제 교보생명 이사회 결과 발표에서 일어난 ‘참여’와 ‘유보’라는 해프닝이 이해되나요? 교보생명은 당국을 설득하진 못했지만,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현실에 굴복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보생명의 입찰 참여 여부가 최종 결정 난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는 28일 입찰 참여 시한까지 시간을 좀 벌었죠.

신창재 회장은 어떻게든 정부의 뜻을 거스를(?) 묘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도 기분 나쁘지 않게. 끝내 우리은행을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보기 좋은 마무리도 생각해야 합니다. 입찰에는 참여하되 유효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아 판이 깨지거나 안방보험과의 경쟁에서 지면 됩니다. 교보생명은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것을 비롯해 아름다운(?) 퇴장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겠죠. 이사회가 선택한 ‘유보’라는 단어가 그런 고민의 결정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보생명에 남은 것은 이제 ‘그릇’ 논쟁입니다. 야망과 도전의 크기 말입니다. 많은 금융인이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는 생존의 문제로 봅니다. 나중에 또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당국의 의중을 충분히 알면서도 판을 이렇게 만들어 왔다는 것은 결국 교보생명과 신창재 회장의 그릇 논쟁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대세가 아니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좋은 경영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보생명의 입장에서 지금 국면은 대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반적인 여건은 그렇습니다.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은 오롯이 신창재 회장의 몫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우리은행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만큼인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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