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인터넷은행 설립을 비롯한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금융권의 반응은 아직 시큰둥하다. 국내 대표 금융그룹인 신한금융 한동우 회장에 이어 비은행 금융그룹으로 인터넷은행 설립 일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도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기존 제도 틀 안에서 금융회사들이 인터넷은행을 만들어봐야 큰 실익이 없다는 게 결론이다. 핀테크에 힘을 실어주려면 인터넷은행의 출현 자체보다는 손톱 밑 가시 규제와 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기존 금융회사 반응은 시큰둥
금융위는 현재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는 우선 온라인금융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걸림돌로 꼽히는 실명확인 방법을 합리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동안 금단의 영역으로 꼽히던 금산분리 원칙도 어떤 식으로든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자본금 요건을 낮추고, 업무 범위도 조정해 인터넷은행 설립 문턱을 낮추고, 기존 은행과 차별화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존 금융회사들은 아직까진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업무에 한정된 인터넷은행은 기존 인터넷뱅킹과 큰 차별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회장은 “단순한 인터넷은행은 의미가 없다”면서 “지금도 PC로 간단한 조회부터 예금•대출 등을 다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금•대출 같은 기존 업무에 집중하는 형태의 인터넷은행 설립은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 핀테크도 인터넷은행도 ‘글쎄’
한 회장은 핀테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평가를 했다. 그는 “핀테크를 하면 핵폭탄처럼 금융산업에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도 최근 한 토론회에서 “국내 증권업계는 이미 정보기술(IT) 활용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어 핀테크 개념이 도입된다고 새로운 것이 쏟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와 증권 거래를 접목한 다음카카오의 증권플러스도 규모가 미미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형태의 거래는 수익성이 없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현행법과 제도 아래선 핀테크 사업이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인터넷은행 활성화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각종 영업 규제나 은행을 공공재로 보는 시각, 기존 대형은행의 텃새에 밀려 자리를 잡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신규 인터넷은행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기존 은행의 서비스 강화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금융위 또 전시행정에 그칠 수도
은행과 증권 금융그룹을 대표하는 두 CEO가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핀테크에 회의론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 환경이 갑자기 바뀌긴 어렵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이 곳곳에 만만치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실제로 금융위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긴 하지만 금산분리나 실명확인 방법 확대 등이 실제로 제도화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않다. 특히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높이는 금산분리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한 ‘천송이 코트’ 논란과 함께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선 금융위가 이번에도 전시행정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진정한 핀테크 활성화보다는 기존 금융권에 인터넷은행 한두 곳을 설립하는 데 만족하면서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금융위의 진도에 맞춰 이미 인터넷은행 설립 계획을 밝힌 상태다.
◇ 손톱 밑 가시와 유리장벽이 더 문제
이에 따라 금산분리를 비롯한 거대 담론은 물론 실제로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손톱 밑 가시 규제와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 철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동우 회장은 “지주회사 내 은행과 카드, 생명을 묶어 종합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룹 내 정보 공유와 활용 등 규제 완화와 신축성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상호 사장은 “비대면 계좌 개설을 허용해도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마다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면서 “인터넷은행은 막대한 금융결제망 수수료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갑작스레 핀테크와 인터넷은행을 외치면서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은 금융인이 많다”면서 “금융권은 물론 IT기업들이 실제로 부닥친 작은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