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로 은행계 금융지주회사가 떠안은 저축은행에는 처음부터 서민금융 강화의 역할론이 '소명'처럼 주어졌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은행권 지주 계열 저축은행들이 출범 당시부터 은행과 연계한 10%대 중금리대출 상품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에도 저축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고금리 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 3년 전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서민금융' 강화 주문
물론 처음부터 중금리대출 상품을 뚝딱 내놓을 수는 없었다. 은행의 체계적인 여신심사 기법을 활용해 내놓으리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사실 은행들에도 저신용자들은 낯선 존재였다. 특히 10%대 금리로 저신용자들의 부실률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은행권 금융지주사들이 미적거리자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직접 금융지주 회장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연 것이 정점이었다.
지주사들은 부랴부랴 은행을 통해 고금리 적금 상품과 10%대 중금리 소액대출 상품 등 '설익은' 지원책을 쏟아냈다. 하나저축은행이 하나은행과 연계한 중금리 대출상품인 '더마니론'을 내놓은 것도 이즈음인 2012년 12월이다.
더마니론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직장인 가운데 추가 대출이 필요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상품이다. 최고한도 1억 원에 대출금리는 최저 9.53%까지 적용했다.
당시 다른 은행들은 리스크를 감안해 300만 원~1000만 원의 소액 대출 상품을 주로 내놨던 던 점으로 비춰봤을 때, 1억원 한도의 더마니론은 본격적인 중금리대출 상품으로 볼 수 있다.
◇ 하나저축銀, 2년 만에 중금리대출 중단…당국 주문에 지주사 노심초사
그러나 하나저축은행은 더마니론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수익성이 악화해 출시 2년 만인 지난해 말 더 버티지 못하고 취급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간 신용등급의 고객층이 적은 데다가 10%대 금리로 부실률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소액 대출이 아니고는 중금리대출상품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실패 사례가 있지만 다른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에선 지금도 서민금융 지원 차원에서 중금리 대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KB저축은행은 200만 원에서 3000만 원을 한도로 6.5%~19.9% 금리의 'KB착한대출'을 운용한다. 신한저축은행 역시 '허그론'이라는 상품을 통해 연 7.9%∼17.5% 금리로 500만 원에서 3000만 원까지 대출해주고 있다.
시중은행에도 3년 전 금융당국의 '서민금융 강화' 정책에 따라 내놓은 소액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들이 남아 있다. 국민은행의 행복드림론2와 우리은행의 우리희망드림소액대출 등이다. 여전히 취급은 하지만, 마음 한편은 항상 좌불안석이라고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이런 가운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지주사 간담회에서 또 한 번 서민금융 강화 차원에서 중금리 대출에 나서줄 것을 주문하고 나서자 지주사들은 바싹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 지주사 관계자는 "중금리 대출 얘기가 또 나와 당황스럽다"며 "지금도 관련 상품이 있는데, 여기에다 대출 금액을 더 늘리고 8~9등급의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라는 얘기라면 리스크가 너무 큰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입장은 3년 전과 같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도 중금리 대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지만, 활성화하지 않았다"며 "지주사들이 은행의 체계적인 여신평가 시스템을 활용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