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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론스타에서 안방보험까지

  • 2015.07.10(금) 14:15

[국경 없는 금융]①
외환위기 트라우마 '금융 쇄국주의' 일관
2금융권 시작으로 외국 자본 진출 가속도

금융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저축은행을 비롯한 2금융권은 이미 외국 자본의 독무대다. 최근엔 중국과 일본 자본의 진출이 특히 활발하다. 국경을 넘나드는 핀테크는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더 앞당기는 촉매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외국 자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금융과 이에 따른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8분 분량의 영상물이 온 나라를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구조조정과 함께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옛 제일은행 은행원의 일상을 다룬 이 영상은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나라의 운명과 함께 온몸으로 희생을 감당한 서민들을 상징하면서 ‘눈물의 비디오’로 불렸다.

당시 제일은행은 1만 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을 내보내고, 결국 헐값에 뉴브리지캐피탈에 팔렸다. 이 무렵 외환은행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외환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후 2003년 카드대란과 현대그룹 부실이란 카운터블로를 잇달아 맞으면서 결국 손을 들었다. 역시 헐값에 론스타에 팔렸다.

우리나라와 외국 자본의 첫 만남은 그렇게 악연으로 시작했다. 국가 부도 위기의 와중에 어쩔 수 없이 헐값에 은행을 넘길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이 외국 자본이 론스타처럼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다 보니 여기에 먹튀와 투기자본의 이미지가 덧칠해졌다.


☞옛 제일은행의 '내일을 기다리며' 일명 '눈물의 비디오' 다시보기



◇ 외국 자본과의 악연 


외국 자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금융산업에 있어 외국 자본은 여전히 악에 가깝다. 여기에다 국가 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더해지다 보니 금융당국은 금융 쇄국주의로 일관해왔다. 


최근 중국의 안방보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중국 덩샤오핑 전 주석의 손녀사위로 알려진 우샤오후이 회장이 이끄는 안방보험은 최근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면서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 사냥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중국 내에서 은행과 생명보험, 손해보험, 자산운용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안방보험은 지난해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다른 입찰자가 없어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았고, 결국 우리은행 인수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뒷말이 많았다. 특히 호시탐탐 우리은행 인수를 노리던 교보생명이 입찰을 포기하면서 의구심을 자아냈다. 당시 금융권에선 금융위원회가 교보생명에 입찰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교보생명이 입찰에 참여하면 유효경쟁이 성립하면서 우리은행을 팔 수밖에 없고, 그러면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안방보험이 우리은행을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로 금융위가 교보생명의 입찰을 가로막았다는 얘기다.

 


◇ 무너지는 금융 국경

문제는 이런 인식과는 무관하게 금융 국경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과는 달리 비교적 진입 장벽이 느슨한 2금융권은 이미 외국 자본의 독무대다. 특히 증권과 저축은행, 캐피탈사들이 잇달아 일본을 비롯한 외국 자본에 팔리고 있다.

실제로 국내 저축은행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의 대주주는 일본계 금융기업인 SBI홀딩스다. SBI홀딩스는 2013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역시 일본계 소비자금융 업체인 제이트러스트는 2012년 친애저축은행에 이어 올 초엔 SC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현재 매물로 나온 업계 2위 HK저축은행도 외국계로 넘어갈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캐피털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이트러스트가 SC캐피탈을 인수했고, KT캐피탈 역시 미국계 PEF 운용사인 JC플라워에 팔렸다. 이밖에 동양증권은 지난해 대만 유안타증권으로 넘어갔고, 현대증권은 일본계인 오릭스가 인수를 앞두고 있다.

◇ 중국 자본이 몰려온다

최근엔 특히 중국 자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4000조 원이 넘는 막대한 외환 보유액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는 중국 금융회사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금융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은행 인수에 실패한 안방보험은 곧바로 동양생명으로 눈을 돌려 인수에 성공했다. 안방보험은 국내 금융회사의 매물이 나오는 대로 계속 사들일 태세다. 중국 푸싱그룹도 LIG손해보험과 KDB생명보험, 현대증권 등의 인수전에 나서면서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2금융권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국 자본의 다음 목표는 은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 입찰에 나섰던 안방보험은 그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2011년에는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이 우리금융 계열사이던 광주은행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핀테크를 비롯한 IT기술의 발달도 중요한 변수다.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핀테크 서비스가 활성화하면 기존 금융산업의 영역을 상당 부분 잠식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금융 국경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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