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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워치]구한서 동양생명 대표의 '일장춘몽'

  • 2017.01.10(화) 15:03

최대 순이익 내며 승승장구하다 3800억원대 대출 사기
구 대표 '고위험 고수익' 경영 전략에 대한 의구심 커져

"탄탄한 성장을 기반으로 더 큰 도약에 나서자."

구한서 동양생명 대표이사는 중국 안방보험에 인수된 직후인 지난해 초 신년사를 통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새로운 주인이 된 안방보험그룹의 세계화 전략과 기존 기업 문화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융합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건데요.

실제로 구 대표가 이끈 동양생명은 이후 괄목할만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저축성 보험을 공격적으로 팔면서 몸집을 불렸고, 처음으로 연간 2000억원 대 순이익 달성도 눈앞에 뒀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곳간도 든든히 채웠고, 안방보험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마저 인수하면서 국내 생보업계 5위권 도약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가 뽑은 '가장 값어치 있는 CEO 순위'에서 구 대표가 국내 최고인 21위에 오르면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3800억원에 달하는 육류담보대출 사기에 넘어가면서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을 고스란히 날릴 위험에 처한 건데요. 

그러면서 다른 보험사들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구 대표의 '고위험 고수익' 경영전략 전반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베일에 쌓인 최대주주인 안방보험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 구한서 동양생명 대표.

◇ "피해 감내 가능" vs "리스크 관리 의구심"

구한서 대표는 급기야 지난 4일 일부 기자들을 불러모아 '사기 대출' 피해 경위를 설명하고, 시장의 우려에 대해 해명에 나섰습니다. 이번 피해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영 시스템을 정비해 국내 일류 생명보험사로 도약하겠다는 '전화위복'의 의지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오히려 '터질 게 터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중국 안방보험 인수 후 전반적인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데요. 

사기 대출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의구심이 꽤 타당해보입니다. 이번 대출 사기는 육류유통 중개회사의 대출 연체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하나의 담보물로 여러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사실이 적발된 건데요. 육류담보대출은 다른 담보대출과는 달리 저당권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파고 든 겁니다. 

◇ 저축성 보험 탓?…'더 근본적 문제' 지적도

그만큼 리스크가 커 은행이나 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는 잘 취급하지 않는 대출인데요. 유독 동양생명만 이 대출을 늘리다가 결국 사기에 넘어간 이유를 두고 업계에선 해석이 분분합니다.

동양생명이 지난해 공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저축성 보험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저축성 보험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저금리 환경에선 판매를 꺼리는 상품인데요. 반면 동양생명은 오히려 저축성 보험 판매를 늘렸고, 그러다 보니 육류담보대출 같은 고위험, 고수익 대출 확대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물론 동양생명이 지난 10년간 육류담보대출을 취급해온 만큼 저축성 보험 확대가 주된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긴 한데요. 하지만 육류담보대출 잔액 3803억원 중 무려 75%에 달하는 2837억원이 연체 상태였다는 점은 확실하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번 사기 대출에 연루된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도 사기 대출에 당하긴 했지만, 연체율은 한 자릿수 정도"라며 "저축은행도 보통 연체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가면 대출을 회수하게 되는데, 75%가 되도록 뭘 했는지 의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 호텔 거액 대출까지...고위험 경영 '우려'

지난해 11월 말쯤 연체액이 급속도로 늘면서 문제가 불거졌는데, 한 달 뒤에나 당국에 보고를 한 점도 석연치 않습니다.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리스크 관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거나, 심지어 '부실 대출을 은폐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최대주주인 안방보험의 지배구조나 경영전략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의혹이 더 커지는 분위기인데요. 얼마 전 동양생명이 안방보험 소유 미국 호텔에 3300억원을 대출해준 점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3300억원은 동양생명 자기자본의 16%에 달하고, 지난해 전체 순이익을 웃도는 액수입니다. 특히 이 호텔의 지난해 순이익은 11억원에 불과했는데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합리적이진 않다는 겁니다. 

김태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동양생명에 대해 "자본과 영업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 동양생명 지난 1년간 주가 추이 (자료=네이버)

육류담보대출 사기와 함께 야심차게 2016년을 시작한 구 대표 입장에선 일 년 농사가 한 순간에 '말짱 도루묵'이 될 처지가 됐습니다. 주당 1만4000원 가까이 올랐던 동양생명의 주가도 1년 전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구 대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앞으로가 더 관건입니다. 최대주주인 안방보험은 고속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통했던 경영전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는 '고위험 고수익' 경영전략을 한국 시장에서 구현해야 할 구한서 대표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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