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을 인수했던 게 10여년 전이다. 떠난 지도 3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금융권에선 여전히 론스타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진다. 심지어 '핫' 하기까지하다.
금융권 한 인사는 "론스타라면 정말 징글징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본자유화와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론스타라는 펀드를 만났고, 그들의 수법에 된통 당했다. 이는 악연이 됐고,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론스타는 철수했지만 떠난 자리엔 먹튀, 투기자본이라는 얼룩이 남았고, 각종 고소와 소송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론스타 이전에도 국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은 있었지만 국내 대형 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단기 차익을 남긴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것도 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사모펀드가 말이다. 그래놓고도 세금 덜 내겠다고 각종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시민단체로부터 각종 고발과 감사원 감사, 검찰 조사까지 받은 일도 처음이었을 터. 이러한 첫 경험이 결국 국내 금융계에 외국자본에 대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됐다.
◇ 론스타-외환은행 악연..현재 진행 중
론스타는 지난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국내에서 철수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팔아치우려 했던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각종 고발을 당했고 전방위적인 소송전도 치르고 있다.
그 정점은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무려 5조 1000여억 원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다. 론스타는 정부가 지난 2007년 HSBC의 외환은행 인수를 부당하게 지연해 계약이 파기됐고, 결국 하나금융에 2조 원가량 낮은 가격으로 매각해야 했다며 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우리 정부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
제소의 또 다른 배경은 세금 문제다.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외환은행, 극동건설 등 론스타의 매각 차익 4조 6000억 원에 우리 정부는 8500억 원의 세금을 매겼다. 이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다. 이달 7일까지 미국 워싱턴 ICSID에서 2차 심리기일을 마쳤고, 내년 1월쯤 3차 심리기일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와의 악연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은행법상 은행 인수 자격이 없다. 외환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만들어 이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나중에 헐값인수, 자격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또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헐값에 외환카드를 외환은행에 흡수합병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론스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었고, 이후 외환은행을 팔고 나간 후엔 각종 세금 분쟁을 일으키며 논란을 자초했다. 먹튀, 투기자본이라는 오명도 그래서 생겼다.
▲ 지난 2008년 외환카드 주가조작사건 재판 출석 후의 존 그레이켄 론스타회장 모습. |
◇ 잊을 만 하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
이뿐인가. 잊을맞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툭 튀어나오기 일쑤다.
올 초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인한 배상액 중 일부인 400억 원을 외환은행이 물어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외환카드 2대 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탈이 싱가포르 국제중재재판소에 론스타와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그 결과 론스타는 718억 원을 배상했다. 그런데 론스타는 이 배상액은 외환은행이 지급할 몫이라며 외환은행을 상대로 싱가포르 고등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리고 외환은행은 400억 원을 론스타에 지급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곳은 론스타다. 그런데 이 돈 일부를 외환은행이 물어준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하나금융은 규정대로 처리했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공감을 얻기엔 부족하다.
론스타는 최근의 외환은행 수익 악화의 주범으로도 지목됐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론스타가 떠나면서 지난 2008~2009년 외환은행의 인건비를 올려놨다"고 지적했고 "론스타가 지난 10년 동안 외환은행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고도 꼬집었다.
물론 당시 하나-외환은행 통합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론스타라는 투기자본의 성격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장기투자는 외면한 채 단기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고, 또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반발은 임금을 올리는 식으로 무마해왔다. 이런 행태가 결과적으론 외환은행의 장기 성장을 가로막은 셈이 됐다.
◇ 론스타 트라우마..씨티·SC은행에 불똥?
이러한 론스타 트라우마의 영향이었을까. 우리는 유독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돈을 벌어 나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씨티은행과 SC은행이 매년 해외용역비 등의 명목으로 혹은 배당으로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을 해외 본국으로 보낸다. 때마다 논란이 된다.
론스타라는 투기자본에 크게 덴 국내 금융계는 씨티은행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각각 옛 한미은행과 옛 제일은행을 인수할 당시 선진금융회사, 글로벌 금융회사의 진출이라며 대환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선진 금융기법을 찾기 어렵다는 시각도 팽배했다. 이보다는 국내 영업점과 직원을 줄이고, 자신들의 강점인 소수의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금융 등에 주력하면서 눈총을 받았다. 국내 은행들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고, 국내 감독당국이나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어긋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글로벌 금융회사에 대한 실망감이 컸고 론스타 등의 투기자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나왔다. 이런 와중에 배당 등으로 본국에 돈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다는 시각에서 보긴 힘들었다.
게다가 SC은행이 작년 말 영국 본사에 1조 원을 배당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들 금융회사가 국내에 진출한 지 모두 10년이 됐지만 론스타, 그리고 이들의 영업방식 등이 머리에 뒤엉키며 생긴 부정적 인식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윤창현 시립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는 "펀드가 들어와서 싼값에 인수하고, 주가조작하고, 세금도 안 내고 떠나는 그런 모습들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며 "다만 금융회사가 정상적인 형태로 들어와서 영업하고, 본국에 배당하는 것에 대해선 달리 볼 문제이고, 또 인정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현재 은행연합회장)이 국회 국감장에 출석해 배당, 해외용역비 등의 본국 송금 논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