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의 30%를 반납하겠다." (3일, 신한·하나·KB금융 그룹 회장단)
"연봉 20%를 반납해 채용확대에 쓰겠다." (4일, 3개 지방금융 그룹 회장단)
금융권에서 수장들의 '선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일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연봉의 30%를 반납해 일자리 창출에 쓰겠다며 깜짝 발표했고, 곧장 지방은행금융지주 3곳의 회장들도 연봉의 20%를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 지방 금융지주도 동참
'회장님'들의 선행을 결단한 이유는 같습니다. '연봉 삭감으로 마련한 재원을 일자리 창출에 보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동참하겠다'는 겁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금융환경이 악화하고 있어, 이런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도 들고 있습니다.
회장님뿐 아니라 각 그룹 계열사 경영진까지 참여하면 연봉 삭감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은 연간 70~80억 원으로 예상합니다. 여기에 지방금융지주까지 합세하면 100억 원 안팎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 3년간 약 1000명 이상의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는 추청도 나옵니다.
성과급을 포함해 매년 20억~30억 원의 연봉을 받는 회장님들에게도 수억 원의 돈은 작지만은 않은 금액일 겁니다. 나름 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에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숨통을 틔워준다니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도 연봉반납?" 전전긍긍
그러나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단 다른 금융사들이 그렇습니다. 취지는 좋지만, 3개 금융그룹이 다른 금융사와 상의도 없이 '깜짝 발표'를 한 탓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섭니다. 4일 지방금융그룹 회장들이 연봉반납에 동참한 것도 이런 이유가 없지 않을 겁니다. 다른 금융사들도 검토에 들어갔거나, 분위기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전체가 '고연봉 직종'의 상징처럼 돼 있는데, 사실 일부 금융사의 경우 일반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어 '연봉 반납'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나옵니다.
아직 연봉 반납을 결정하지 않은 한 금융사 관계자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 맞춰서 일자리 창출 지원 프로그램을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 이번 '이벤트'로 오히려 이런 근본적인 노력의 빛이 바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일부 금융사들에선 연봉의 30%를 내도 일자리를 몇 개 창출하지도 못한다"면서 쓴웃음을 짓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너무 이벤트성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깜짝 발표'와 '연봉 반납'이라는 형식부터 그렇습니다. 나쁜 일도 아닌데 굳이 세 명의 회장만, 그것도 비공개로 만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입니다. 또 돈을 모아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 '압박이냐, 눈치보기냐' 시선도
금융그룹 회장들이 종종 격의 없이 만나는 와중에 나온 결단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금융당국이나 정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비공개 만남을 통한 깜짝 발표'라는 형식 때문입니다.
'윗선'의 압박이 없었더라도 최근 정부가 노동개혁을 외치며 임금피크제 확산 등을 강조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발표라, 알아서 눈치 보기를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회사, 특히 은행을 계열사로 둔 그룹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입니다.
금융권 전체 급여 체계와 인적 구조를 손질하기에 앞서 노조 측에 '기선 제압'을 한 것이라는 조금 더 나아간 해석도 나옵니다. 오는 11일에는 금융노조와 금융사용자협의회의 협상이 예정돼 있습니다. 사용자협의회 측은 이번에 임금피크제와 함께 기존의 호봉제 방식을 연봉제로 바꾸는 방안 등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금융권의 경직되고 높은 임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지속해서 나오던 얘기입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연봉제 중심으로 개편하는 등 비용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말 노조를 기선 제압하려는 의도라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며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풀 수 있는데 이런 압박용 카드는 오히려 합리적인 논의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