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우리은행장의 갑작스런 사의표명으로 차기 구도는 안갯 속이다. 차기 행장 선임 때까지 경영공백은 물론이고 조직분란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휴일인 오는 5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행장 선임 등 향후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주주명부폐쇄 등의 안건을 처리한다. 향후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주총일을 확정하기 위해서 주주명부 폐쇄 등이 앞서 이뤄져야 한다. 경영공백이 우려되는 만큼 행장 선임에도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차기 행장 선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벌써부터 한일은행 출신들의 하마평이 무성하고 새 정부의 기류에 따라선 외부 출신 선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이 행장의 사임에 결정타가 됐던 우리은행 채용비리 건이 불거지면서 상업·한일은행 계파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차기 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순우 행장에 이어 이광구 행장까지 연이어 상업은행 출신이 행장에 오르면서 한일 출신의 불만도 커진 영향이다.
현직에서는 손태승 글로벌부문장(59년생)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한일 출신으로 전주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왔다. 남기명 국내부문장도 유력한 차기 후보였지만 상업은행 출신인데다 채용비리 건으로 직위해제 되면서 내부에선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전직 임원들 중에선 올초 이 행장과 함께 막판까지 행장자리를 겨뤘던 이동건 전 영업지원그룹장과 김승규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꼽힌다. 둘다 한일은행 출신이다.
또 다시 차기 행장 선임 과정에서 올초와 같은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우리은행 안팎에선 한일은행 출신이 행장에 앉는다고 계파 갈등이 사라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팽배하다.
▲ 사진/이명근 기자 |
이 행장의 갑작스런 사의표명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 행장은 서강금융인회(이하 서금회) 출신으로 2014년 행장 선임 과정에서도 구설에 올랐고 사실상 전 정부 사람이라는 인식이 많다. 이런 점들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이어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언급하는 등 새 정부의 이같은 기류 또한 조기 사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 판이 짜여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계파에서 자유롭고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 등이 새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들어 손보협회장에 김용덕 전 금융위원장 선출되고 은행연합회장에도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시절의 올드보이들이 속속 재등판하면서 은행권 전반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우리은행도 정부은행으로 한때 황영기 우리금융지주회장 겸 우리은행장(현재 금융투자협회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등 외부 낙하산 인사들이 행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민영화 이후 또다시 낙하산 인사가 발을 들인다면 민영화의 취지와 대외적인 신인도를 훼손하고 우리은행의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은행 한 사외이사는 "아직 공모를 어떻게 할지 등의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사외이사는 "외부 출신이 마땅한 인물이 있느냐"면서 "생각만큼 인물이 없다"고 말해 내부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전직이든 현직이든 우리은행을 잘 아는 사람이 와야 현재의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목표로 했던 지주사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임추위는 올초 행장 선임 땐 공모 자격으로 최근 5년내 전현직 임원, 즉 내부출신 인사로 제한한 바 있다. 현재로선 자격 조건을 확대할지 여부 등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추위의 위상과 역할의 변화도 변수다. 올초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민영화 이후 정부의 개입을 제한하면서 임추위에 힘을 실었지만 새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일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지분 18%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다. 자칫 과점주주 체제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지만 정부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빌미로 최대주주로서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