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산업은행과 GM을 위한 변명上에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한국GM 2대주로서 직무유기했다', 'GM에 질질 끌려다닌다' 등 산업은행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 전까지 2대주주로서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2002년 대우차 매각때부터 거둔 성과를 생각한다면 쉽게 산업은행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산업은행은 채권단 대표로 협상에 참여해 GM이 지분을 15년간 동의없이 매각을 할 수 없도록 '자산처리 거부권 협약'을 맺었다. 당시 헐값 매각 논란도 있었지만 15년 경영 유지 보장을 받으며 '먹튀'를 방지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2009년 GM 파산신청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한국GM은 산업은행에 불리한 불법적인 유상증자를 진행했지만, 산업은행은 법정 다툼 끝에 소액주주의 '비토권'(거부권)을 보장받았다. GM 협상 테이블엔 항상 산업은행이 앉아 있었다.
대한상사중재원이 2014년 발간한 '중재 341호'에 실린 'GM대우와 산업은행간 협상에 있어 국제중재의 활용'을 보면 자세한 내막이 나온다. 기고자는 2009~2010년 산업은행 법무실에서 근무했던 이지은 변호사다. 아래는 기고문의 요약문이다.
"2009년 파산신청한 GM과 산업은행은 '기술이전 및 비용분담계약(CSA)' 개정과 소수주주권 강화를 위해 30여 차례 협상했다. 그해 10월 GM은 GM대우 정관과 주주간계약서를 위반하고 4억달러 규모의 일방적인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GM 지분율은 72%에서 83%로 증가한 반면 산업은행 지분율은 28%에서 17%로 하락,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소수주주권(비토권과 이사 2인과 감사 1인 임명권)이 상실됐다.
2010년 4월 산업은행은 ICC(국제상업회의소) 중재신청 분쟁통지서를 GM 앞으로 발송했다. 결국 그해 말 양측은 주주간 계약상 특별결의사항에 대해서는 지분 15% 이상 주주도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낮췄다. 사외이사 추천권 2인은 그대로 보유하게 했고, 상환전환 우선주 2조3000억원에 대해 GM이 상환보장하는 협상 성과를 거두었다."
▲ 배리 앵글(오른쪽)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20일 국회를 방문, 한국GM 대책 TF 의원들과 면담을 가졌다. |
산업은행이 마련한 '안전장치'가 없었다면 GM은 진즉에 '먹튀'했을지 모른다. 한국GM 지분 17%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2대 주주'이면서 '소수주주'다. 더욱이 작년말부터 비토권도 사라졌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한국GM에 지난해 회계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GM은 '경영 기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할만큼 했고, GM은 징그럽게 노련할 뿐이다.
더욱이 산업은행은 지난해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를 통해 한국GM 철수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GM이 지분매각과 공장폐쇄 등 방식으로 철수하면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한국GM이 일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를 선언했다며 뒤통수를 맞았다고 불쾌해할 이유가 없다. 작년부터 경고등은 켜져 있었다. 정부는 '설마…'라는 안일한 생각에 자기 발등이 찍혔을 뿐이다.
협상은 시작됐다. 배리 엥글 GM 본사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면담이 22일 열리고, 산업은행과 GM 실무자가 접촉하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정부나 여론이 기를 꺾을 필요는 없다. 상대는 100년 넘게 세계적으로 차를 팔아온 GM이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GM을 "아홉수를 보는 도사"라고 표현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과 아깝지만 내어줄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한다. 이미 GM은 일자리를 인질로 잡고 한국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내할 지 정해야 한다.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산업은행은 협상 테이블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감성적인 평가나 비판, 책임떠넘기기도 안된다. 그럴 사안이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