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15만개를 지키고 '먹튀 방지' 장치도 되살릴 수 있을까.
산업은행이 한국GM 투자협상 과정에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지켜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혈세 수천억원을 부실기업에 투자하는 만큼 일자리와 먹튀 방지 장치 모두를 지키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GM은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 받을 수 있는 비토권 등 먹튀 방지 장치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GM이 먹튀 방지 장치를 수용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산업은행에 더 큰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협상의 성패는 산업은행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하고 먹튀 방지 장치를 마련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GM은 산업은행에 신규자금 투자를 위한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오는 27일까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은행은 다음달초 실사가 끝나기 전까지 구속력있는 계약을 맺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물밑협상에서도 투자 조건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신규자금 투자 조건으로 먹튀방지 장치를 두자고 제안하고 있다. 비토권 등 소수주주권리를 보장받거나 미국GM이 향후 10년간 한국GM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방안이다.
산업은행은 2002년 대우차(현 한국GM)를 GM에 매각할때 15년간 소수주주권리를 확보하며 먹튀 방지장치를 마련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29.9%를 보유한 소수주주였지만 비토권과 이사2인 감사1인에 대한 임명권을 확보했다. 대주주를 견제하면서 먹튀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미국GM은 2009년 소수주주권리를 불법적인 방식으로 빼앗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한 미국GM은 한국GM에 대한 일방적인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산업은행 지분율이 28%에서 17%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 산업은행은 소송을 통해 소주주주권리 마지노선을 25%에서 15%로 낮추며 비토권을 되살려냈다.
하지만 이 소수주주권리는 작년 10월 사라졌다. 정의당에 따르면 미국GM과 산업은행이 2010년 맺은 '장기발전 기본합의서' 기간이 만료되면서 작년 10월16일 비토권은 상실됐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GM과 협약을 통해 비토권 등 20~30개 권리를 확보했는데 상세한 협약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중 핵심적인 권리인 비토권은 작년에 만료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진행될 협상에서 산업은행은 먹튀 방지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GM은 더 큰 투자를 받기 위해 수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양측은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3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조건을 GM에 제시하고 협의중인데 우리에게 비토권을 부여할지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미국GM을 설득해 비토권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GM 입장에선 소수주주권을 보장해주면 경영에 간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비토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일정 지분율도 지켜내야 한다. 현재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02%를 가지고 있는데 비토권을 되살리기 위해선 현재 지분율을 지켜야한다. 하지만 미국GM은 한국GM에 대한 차입금 27억달러(약 2조9000억원)를 출자전환하고 산업은행이 지분율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이 경우 산업은행은 5000억원을 돈을 쏟아 붓고도 지분율이 1% 안팎으로 낮아지게 된다.
산업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차등감자를 GM에 요구하고 있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주주인 미국GM만 감자를 진행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GM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우리는 차등감자를 요구하는데 GM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미국GM이 향후 10년간 한국GM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묶는 방안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GM이 이를 활용해 산업은행에 불리한 조건으로 더 큰 지원금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비토권을 살려낼지, 얼마를 투자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다음달 실사 결과가 나와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