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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융당국의 "사딸라"

  • 2019.02.14(목) 18:17

카드업계, 카드경쟁력 제고TF 운영에 불만
업체간 대립하는 사안에 "알아서 조율해라"
임금협상에 "사딸라"만 주장 드라마 주인공 연상

2002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나온 장면이다. 미국 군수물자 운반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다. 노동자들은 미군과의 협상자로 김두한을 내세운다. 김두한은 협상테이블에서 하루 일당을 1달러에서 4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밑도 끝도 없다. 협상이나 조정 없이 "사딸라"만 외친다. 결국 임금 협상은 4달러로 마무리된다.

드라마 속 김두한은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준 영웅이겠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다. 고도화된 지금의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협상은 결렬될 게 뻔하다.

▲"사딸라" 대사를 패러디한 버거킹 광고 [출처: 유튜브 버거킹광고 영상 캡쳐]

최근 금융당국을 보면 "사딸라"를 외치던 드라마 속 김두한이 떠오른다.

금융당국은 최근 수년 동안 카드업계의 수익성을 좌지우지했다. 카드업은 수수료장사다. 문제는 이 수수료율을 시장이 아니라 당국이 결정해왔다는 점이다. 당국의 밀어붙이기에 연 수익 1조원이 줄어든다.

최근 금융당국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카드사 경영악화를 보완해줄 방안을 내놓겠다며 '카드산업 건전화 및 경쟁력 제고 태스크포스(TF)'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TF가 공식 회의를 한것은 지난해 12월 단 한번뿐이다.

TF 결과를 내놓겠다던 1월은 이미 한참 지나갔고 2월도 벌써 중순이다. 하지만 아직도 당국은 두번째 TF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국은 TF가 지체되는 것을 두고 카드업계 탓을 한다. 최근 당국은 카드업계에 "업계가 입장을 모으지 못하고 각각의 이해만 주장하고 있어 TF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며 이견 조율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정책을 놓고 기업들의 입장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유율을 잃으면 이익이 줄고 직원을 내보내야 한다. 의견 차이가 큰데 기업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며 의견을 조율해 당국에 제출하리라 기대하는건 무리다.

이견을 조율하며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당국의 책임이다. 이미 업계는 TF가 반영해주기를 바라는 건의사항 60여개를 제출했다. 당연히 각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이슈들이다.

특히 레버리지배율과 같은 이슈는 대립하는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다. 소형사로서는 한계까지 차오른 레버리지배율과 대출사업을 위한 가계대출 총량규제의 완화가 절실하지만, 대형사는 점유율을 잃을 수도 있는 규제완화는 당연히 바라지 않는다. 어느 한쪽을 잘못이라고 비판하기 어려운 문제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할때는 자영업자와 이견을 조율해오라는 지시도, 카드업계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주지도 않았다며 불만이다.

카드업계는 이번 TF 운영 과정에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업계 목소리를 충분하게 반영해 줄 것처럼 했지만 무엇하나 똑부러지게 반영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가서비스의 의무 유지기간 축소와 일회성마케팅 비용 축소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모호한 이유로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 TF 회의를 거쳐 당국의 입장을 전한 것도 아니란다. 두 사안은 업계가 이견이 없는 사안이지만 당국은 이렇게 미리 손을 썼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업계에 알아서 조율해서 갖고 오라는 것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당국의 무책임이다. "사딸라"만 외치는 일방통행으로는 당국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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