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산하 연구소에서 경력직 연구원을 모집하면서 이전 연봉 하한선을 지원자격중 하나로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종사한 경험이 있더라도 박사학위가 없을 경우 이전 근로소득이 6000만원이 되지 않는다면 지원할 수 없다는 공고였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해당 규정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간제근로자를 사용기간이 넘어서도 계속 근무시키기 위해 법적인 요건을 명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지만 부작용도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NH농협금융지주 산하의 NH금융연구소는 경력직 연구원 채용공고를 냈다. 모집요건은 4차산업 관련 컨설팅 업무를 해본 경력자나 디지털금융 관련 전공자다.
여기에 추가로 '최근 2개년 연평균 근로소득이 6069만원 이상인 자 또는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요건이 있다.
다른 채용공고와 달리 기존 연봉의 상한이 아니라 하한을 정해뒀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NH금융연구소뿐만 아니라 농협중앙회 산하의 미래경영연구소도 지난해 두차례 채용공고를 내면서 이번 NH금융연구소와 같이 연봉 하한을 둔 바 있다. 해당 기간 다른 금융기관의 연구소 채용공고를 확인해본 결과 연봉 하한을 둔 곳은 농협 계열의 연구소들뿐이었다.
공고를 접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존 연봉 상한을 공지한 것이라면 급여를 낮추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기존 연봉 하한을 정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유와 상관없이 공고에서 정한 연봉 기준이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원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턱이 높아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인 것은 인정하지만 해당 공고는 오해와 달리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기관이나 대학교와 같은 전문기관은 채용 대상자들의 나이가 많은 편이고 각각의 경력을 인정해 각기 다른 조건으로 채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정규직보다는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사용자 입장에서 기간제 근로자는 최대 2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그 기간을 넘어서 쓰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신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은 고용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회사의 고정비를 증가시키고 채용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불거지기 쉽다. 특히 최근 금융권의 채용비리가 문제가 된 상황에서 정규직전환은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는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 조항이 있다. 전문적 지식ㆍ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2년을 초과해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단 조건이 있다. 법에 따라 '최근 2년간의 연평균근로소득이 고용노동부장관이 최근 조사한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의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근로소득 상위 100분의 25에 해당하는 경우'에 2년이 초과해서도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NH금융연구소도 해당 내용을 채용 공고에 공지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NH금융연구소 관계자는 "2년이 넘더라도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하려고 관련 내용을 공지한 것"이라며 "중간경력자나 학위자 채용을 위해서는 소득기준을 지켜야 하며, 만약 박사학위 소지자라면 관련법에 따라 소득기준과 상관없이 2년 이상 근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들도 같은 상황이다보니 채용 과정에서 연봉 조건을 확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모르는 지원자가 몰려들 것을 대비해 허수를 줄이는 차원에서 채용공고에 관련 조건을 알렸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규정에 대해 법적 기준 자체가 가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위 25% 이상의 연봉을 받지 못한다면 고용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법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조건이 생겼겠지만 솔직하게 연구자와 학위자들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상위 25% 이상의 연봉을 받기 전까지는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어렵게 경력을 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