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데뷔전에서 매의 본색을 드러냈다. 15년 만에 기준금리를 두 달 연속 인상하면서다.
이번 한국은행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에는 고공 상승하는 물가를 안정화하고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축소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창용 총재는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2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종전 연 1.50%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연 1.75%로 운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잡히지 않는 물가, 연속 기준금리 인상 배경 됐다
이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무섭게 치솟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애초 시장에서는 한은이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고물가 행진이 이어지자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기대비 4.8% 오르며 전월에 이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고물가 행진은 대외 리스크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 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령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원유 등 주요 원자재는 물론 축산품, 해산물 등 식재료등도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이러한 고물가를 국내 경제 최대 뇌관으로 보고 해결방안을 고심중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추가경정예산안을 살펴보면 물가 안정을 위한 예산으로 1조2000억원 가량을 배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당국과의 정책공조에도 나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금통위 직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직접 만나 물가에 대해 논의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은 금통위 역시 이날 기준금리 인상 배경이 높은 물가상승률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금통위는 "(국내)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올해중 상승률도 2월 전망치인 3.1%를 크게 상회하는 4%대 중반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이은 '빅스텝' 예고도 기준금리 인상 배경
물가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이은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배경으로 꼽힌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이달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종전 0.50%에서 한번에 0.50%포인트 인상한 1.00%로 운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5일 공개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이번 회의 참가자들은 0.50%포인트의 금리 인상이 연내 두번 이상 더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는 0.75%로 다시 벌려졌지만 빠르게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경우 국내에 몰려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원화의 가치가 절하되는 충격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2월부터 순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형성된 이후 실제 금리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지속해서 외국인 자금의 유출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달러/원 환율 역시 이달 중 1290원선까지 치솟은 바 있다.
현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발표한 공동선언문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협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1260원선까지 안착해 있다. 다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달러/원 환율이 연 중 1300원선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자본유출 가능성은 커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나 안심스러운 징조도 있다"며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많이 낮아졌으며 채권쪽에서는 오히려 소폭 유입되고 있고, 국내의 해외투자가 늘어난 점 역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연이어 빅스텝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며 한미간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로 인해 대규모 자금유출이나 원화 절하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