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①'빅테크'와 '빅보험' API 샅바싸움(8월21일)>에서 계속
사실 대형 보험사들은 복잡한 보험상품 특성상 플랫폼에서 보험을 비교·추천하는 게 어렵다면서 정보기술 대기업(빅테크) 중심의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자체를 반대해 왔습니다. 설계사 등 모집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도 있었죠.
또 이미 다이렉트 채널을 활용한 자동차보험 판매를 활성화한 손보사들은 지금껏 안 나가던 모집 수수료를 빅테크에 줘야하는 문제도 제기했죠. 보험업계가 (플랫폼 기업들은 부정적인) 표준 API를 계속 고집하는 게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출시에 부정적 입장이란 걸 보여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모두 다 유불리 따져 '이합집산'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험업계라고 의견이 모두 통일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손보사들은 빅테크의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빅테크뿐만 아니라 이들의 플랫폼을 활용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중소형 경쟁사들에 대한 경계심도 높습니다.
반면 일부 중형사들은 빅테크와의 공존을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회사와 빅테크 간 개별 API 구축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형사 눈총에 크게 떠들지는 못하지만요. 이 기회에 수익성 효자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자동차보험에서 점유율을 키워보겠다는 겁니다.
빅테크도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나 유불리가 다릅니다. 서비스 참여 업체는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뱅크샐러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SK플래닛 △NHN 페이코 △쿠콘 △핀다 △핀크 △해빗팩토리 △헥토데이터 등 11곳인데요.
앞서 비슷한 서비스를 한번 시행했다가 접은 한 빅테크는 표준 API든, 개별 API든 상관없다는 쪽입니다. 이미 노하우가 쌓인 데다, 전국민적인 모바일 메신저 채널을 활용하기 수월한 만큼 일단 시행하면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읽힙니다.
하지만 이런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대형 테크기업은 개별 API 방식이 적합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거죠. 표면적인 취지는 표준 API로는 개인 특성에 맞는 맞춤형 비교·추천을 할 수 없다는 건데요. 속내에는 후발주자로서 주도권을 가져올 계기를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이 나옵니다.
중소형 핀테크사들은 차라리 표준 API 방식으로 하자고 한답니다. 서비스 활성화 여부를 떠나 당장 개별 API 개발에 투입할 비용과 시간 등의 여유가 부족하다는 게 배경입니다. 이에 개별 API를 주장하는 빅테크는 "맞춤형 서비스를 할 능력이 없으면 방해나 하지 말라"는 태세랍니다.
시한부 서비스…진짜 소비자에 이득일까
결국 지난 17일 합의체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큰 틀에서 표준 API로 서비스를 출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실손의료·해외여행·저축성보험과 관련된 수백가지 항목들에 대해 보험사와 빅테크 간 의견이 모아졌답니다.
우선 자동차보험의 경우 △차종 △운전자범위 △상품담보 △마일리지 등 할인특약 등 전반적인 항목을 공통으로 쓰기로 했고요. 실손보험은 가입금액, 해외여행은 해외실손 담보 중 중대사고 특약, 저축성보험은 공시이율, 환급금 등을 포함해 세부 항목들까지 표준 API로 공유하기로 협의가 된 상태랍니다.
합의된 표준 API 항목들은 개개인의 보험료를 계산하는 데 쓰이게 되죠.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긴 논의 기간을 거쳤지만 결국 표준API 항목이 합의됐다는 점에서 보험사와 빅테크 간 오고 갈 정보에 대한 큰 틀이 마련됐다"며 "내년 초 서비스 오픈까지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API 방식을 정했다고 비교·추천 서비스 출시까지 순항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또 나옵니다. 테크 기업이 플랫폼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서죠.
보험사들은 "비교·추천 서비스에서 저렴하고 보장내역이 좋은 상품을 비교한 뒤, 자사 홈페이지로 넘어와 가입하도록 유도하겠다"며 벼르고 있답니다. 플랫폼에서 가입하면 수수료를 내줘야 하니까요.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디자인을 어떻게 구성할지, 모바일에 특화시킬지 등도 보험-테크 사이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플랫폼 기업의 비교·추천 알고리즘을 한국거래소 자회사인 코스콤이 사전 검증하도록 한 것도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보험과 플랫폼 업계 모두 코스콤이 제3자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뒤에서는 "알고리즘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냐"며 의심을 던집니다.
또 보험업계는 플랫폼이 시장을 흙탕물로 만드는 법인보험대리점(GA) 수준에 그칠지 모른다는 점을 걱정합니다. GA는 여러 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보험상품을 파는 판매 대리회사를 말하는데요. 판매수수료나 시책(판촉장려수당)이 많은 상품 위주로 보험상품을 판매하면서 보험업계를 흔들고 있죠.
손보사 한 관계자는 "테크기업에 걸어놓은 수수료 제한도 GA처럼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면서 "보험사들의 수수료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끝나면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향후엔 전반적으로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하죠.
다른 관계자는 "어떤 테크사가 더 많이 고민하고 소비자 편의를 위한 기능을 충실히 반영했는지 비교·추천 서비스의 혁신성과 차별성을 인정받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알력 탓에 등장 전부터 기대보다 걱정이 큰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