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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증가 은행 탓하는 당국…은행들은 곤혹

  • 2023.08.21(월) 15:47

상생 금융 하라더니…가계대출 조이기 나선 당국
전문가 "가계대출 증가 원인은 부동산 규제 완화"

가계대출에 대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오락가락하자, 은행권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고금리로 대출받은 금융소비자의 부담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상생금융을 강조하며 은행권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확대 주범으로 은행권을 지목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 놓고 가계부채 증가 책임을 은행에 미루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은행권 주담대 한달새 6조원 ↑ 

2023년 금융권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감폭 / 그래픽=비즈워치

21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4개월 연속 증가해 7월말 기준 1068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중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20조8000억원이었다.

특히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지난 2월부터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대비 5조6000억원 늘었는데, 은행권의 경우 6조원이 늘어났다. 제2금융권에서의 주담대 잔액 감소(4000억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증가로 인해 전체 주담대 잔액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 3월부터 지속됐다. 전체 금융권의 주담대는 △4월 1조8000억원 △5월 3조6000억원 △6월 6조4000억원 △7월 5조6000억원 증가했다. 은행권만 놓고 보면 △4월 2조8000억원 5월 4조3000억원 △6월 7조원 △7월 6조원 증가했다. 계속해서 주담대 잔액이 감소하는 제2금융권과 달리 은행권에서는 매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에서는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주범으로 은행권을 지목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가계대출과 관련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편법적으로 우회하고 있는지 금감원과 함께 집중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이 사용되거나 비대면 주담대에서 소득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일반 상식에 벗어나서 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이 없는지, 상환능력이 부족한 분들에게 과잉 대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신중하게 살펴달라"고 은행들에 당부했다.

같은 날 이복현 금감원장도 "가계부채는 관리 범위내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8월중으로 현장점검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산정 과정에서 DSR 등이 적정했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 등 은행권 대출 영업 확대가 가계부채 증가 원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지난 17일 국내 17개 은행 은행장을 소집해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이 부원장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중 하나인 가계부채 증가세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가계대출 증가 원인을 상세히 분석하는 한편, (은행들의) 가계대출 취급 관련 법규 준수 여부와 심사 절차의 적정성 등을 진단하고 점검 결과 미흡한 점은 즉시 개선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주범?…부동산 규제 완화가 원인

은행권에서는 이런 당국의 지적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 여부는 당국도 알고 있던 것인데 최근 가계대출이 반짝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원인으로 지목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각 은행별로 출시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계대출 증가에 주범이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생 금융을 강조하면서 올해초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하더니, 다시 또 대출을 줄이라고 하니 다시 금리를 올리라는 의미인가 헷갈린다"고 덧붙였다.

실제 당국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은행권에 상생 금융 차원에서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등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또 가계 빚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은행권의 50년 만기 대출, 특례보금자리론 등은 금융당국이 제안한 상품이다. 이자 부담을 줄여 가계 대출을 독려한 셈인데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다시 대출 조이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담대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첫 시작은 정책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이였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월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초장기 정책모기지' 도입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후 주택금융공사가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한 것이 50년 만기 주담대의 시작이었다.

다만 주금공이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만 34세 이하 또는 결혼 7년 이내 신혼가구 등의 제한이 있었지만,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을 제외하고는 나이 제한을 둔 곳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정부가 지난해부터 DSR 규제 예외 적용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해 온 점을 꼽았다. 지난해말 금융당국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을 꺼내 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투기·투기과열지구 15억원 초과 아파트에도 주담대가 허용됐다. 또 무주택자 주담대 비율(LTV)은 50%로 일원화됐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주담대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기 늘어난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전날 기준 3851건으로 2021년 8월(4065건) 이후 가장 많았다. 작년 10월 559건까지 떨어졌다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7월에도 21일 기준 3358건(집계중)이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부양하기 위해서 부동산 규제를 80% 해제했는데, 이것이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당국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또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은행권의 주담대가 늘어난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주담대 대출은 50년 상품이 나오기 전부터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당국의 가계부채 대응 방안은 주택담보대출의 건전성 관리와 관련해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한 규제 검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당장 가계부채 증가 기조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착륙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증가에 제동을 거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증가에 은행들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너무 낮게 가져갔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완화 기조가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은행들도 정부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자 이자수익을 내기 위해 대출을 급격하게 내준 만큼 가계대출 증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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