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장애인 A씨는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월 130만원을 번다. 장애인 연금까지 하면 월 소득은 168만원 정도다. 내 집 마련을 꿈꿨던 A씨는 은행을 찾았지만 실망감만 느꼈다. 작은 아파트라 그 동안 모은 돈에 1억5000만원 정도만 대출을 받으면 될 줄 알았지만 너무 적은 소득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장벽을 넘지 못했다.
금융은 부자(고액 자산가)들에게 친절합니다. 얼마나 많은 자산가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느냐가 금융사들의 경쟁력인 까닭이죠. 특히 은행들에게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WM(Wealth Management, 자산관리) 서비스는 금융산업의 성장동력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자산이나 수입이 적은 장애인과 고령층 등은 금융사에게 수익을 안길 확률이 낮습니다. 금융사들은 그들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조금 더 제공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밀어내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주요 관심 대상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은행은 공공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금융사도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회사)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금융사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취약계층을 보듬는 지원 사업도 나서고 있지만 금융 기업의 최우선 순위는 고액 자산가를 유치해 수익을 확보하는 거죠. 금융취약계층이 금융을 이용할 때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자 고객 유치가 은행 경쟁력
최근 은행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지나친 이자이익'을 넘어 혁신이 없다는 비판까지 받는 상황이죠.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은행들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가 투자일임업 허용인데요. 이는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내용입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WM 서비스 성장전략과 선결과제' 리포트에서 "국내 WM 시장은 금융자산 축적에 따른 수요 확대를 기반으로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WM 서비스는 은행업의 신성장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신흥 부유층 등장이 국내 WM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합니다.
그 만큼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력은 은행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얘깁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초고액자산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의 니즈(Needs)에 맞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 투자 컨설팅은 물론 세무 서비스도 기본입니다. 고액 자산가인 만큼 절세와 자녀들에게 부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증여세 등도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인데요. 이를 위해 은행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고액 자산가들은 은행에서 받는 대접도 남다릅니다.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세미나는 기본, 각종 미술 전시회 초청과 미술품 매입·매각 자문 등을 포함한 아트뱅킹 등 일반 고객들은 접근이 어려운 서비스도 자산가들은 누릴 수 있죠.
은행이 이들을 이렇게 우대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이익 성장을 이룰 수 있어섭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산규모가 큰 고객일수록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 모두에 도움이 된다"며 "일반 고객 10명을 유치하는 것보다 고액 자산가 1명을 유치하는 게 여·수신 유치나 수수료면에서 나은 만큼 자산관리 서비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소외계층 위한 금융 혜택은 어려워
시중은행들은 고령층과 장애인 등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긴 합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화 점포 뿐 아니라 직접 고령층 고객들을 찾아가는 금융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에 취약한 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금융 교육도 하고요. 금융 서비스가 빠르게 디지털화되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령층을 위해 디지털 금융 교육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ATM) 보급을 비롯해 청각 장애인을 위한 동영상 자막 서비스와 수어 서비스, 시각 장애인용 음성 서비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가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소외계층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유는 이들 역시 고객이기에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하는 것이죠.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해야하는 '의무'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예·적금과 대출 등 대표적인 금융상품 이용 과정에서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금리 혜택 등은 제한적입니다. 당장 수익성이나 건전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의 영업은 기업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죠. 자체적으로 더 유리한 금리를 제공하는 방식 등의 혜택은 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취약계층은 재산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시장에선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이들에 대한 금융 지원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상품을 은행이 취급하는 경우는 있지만 은행 자체적으로 소외계층만을 위한 특화 상품을 운영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한 금융 전문가도 "대출 등 금융상품은 엄정한 신용평가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금융 이용 접근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판단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소외계층이라고 해서 신용상태나 회수 가능성이 낮은 이들에게 우대금리를 줘 가면서 대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지원을 은행이 맡는다면 국가의 책임을 금융사에게 넘기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