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와 재지정이라는 오락가락 정책에 더해 추가적인 가계대출 규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은행권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당국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를 은행권 대출금리에 반영하도록 압박하며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이번엔 강남 집값 상승을 이유로 대출 억제를 주문하고 있다.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정책대출 공급을 유지해 놓고 되레 금리인상 카드를 꺼낸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방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주택가격이 급등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서울·수도권 지역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점검을 강화하고 금융권 '자율관리'를 재차 강조했다.
다주택자의 신규 주담대를 제한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 관련 조건부 전세대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월별·분기별 가계대출 관리 체계에 더해 집값 상승세가 뚜렷한 수도권은 지역별 가계대출 추이까지 점검한다.
주택구입자금대출(디딤돌), 전세자금대출(버팀목) 등 정책대출이 서울·수도권 주택시장을 과열시킬 경우 대출금리를 추가 인상키로 했다.
금융감독원이 으름장을 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0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1분기 자체 가계대출 관리목표를 초과하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개별 경영진 면담을 통해 초과원인 점검 및 관리계획 준수 등을 유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주택 관련 대출을 이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관련기사 : 이복현 "1분기 가계대출 목표 초과 시 경영진 개별 면담"(3월20일)
하나은행은 오는 27일부터 서울 지역에 한해 다주택자의 구입 목적 주담대 및 조건부 전세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할 예정이다. SC제일은행은 오는 26일부터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신규 주담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오늘(21일)부터 서울 지역 내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대출 증가세에 따라 자제척인 규제를 강화할 공산이 크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에 은행권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기준금리 및 시중금리 인하로 대출금리는 낮추면서 동시에 대출총량은 제한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은행 한 관계자는 "관련부서에서 서울·수도권 대출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도 "연초부터 토허제 해제에 대출금리 인하를 종용해놓고 '은행이 알아서 잘 관리하라(자율관리)'는 주문에 난감하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를 앞두고 가계대출이 폭증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게 최대 골칫거리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 눈총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만 여기서 대출이 더 몰리면 작년처럼 인위적인 가격 조정(대출금리 인상)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정부 대책이 서민·실수요자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남 3구 집값과는 무관한 정책대출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한 점이 그렇다. 정책대출은 지난해부터 매달 2조~3조원씩 늘며 전체 가계대출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달 올해 정책대출을 전년 수준인 약 60조원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대출 공급을 유지키로 한 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였지만, 집값 과열 조짐에 입장이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관련기사 : 강남 집값 오르는데 '디딤돌대출' 금리 인상 엄포…실수요자 등터진다(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