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페인트로 유명한 노루그룹의 오너가 우회(迂回)적인 지분 대(代)물림에 들어갔다. 후계자가 사실상 절대주주로 있는 IT 계열사에 지주회사 지분을 대거 넘겼다. 향후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후계승계 기반을 다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너, IT 계열사에 지분 넘긴 뻔한 이유
19일 노루홀딩스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한영재(67) 노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블록딜을 통해 지분 4.51%(보통주 기준·60만주)를 처분했다. 매각금액은 70억원(주당 1만1650원)이다. 소유지분은 30.57%(특수관계인 7명 포함 44.68%)로 축소됐다.
노루그룹 소속 계열사 디아이티(DIT)가 대상이다. 디아이티는 새롭게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며 일약 단일 2대주주로 부상했다. IT서비스 업체다. 그룹 계열사들을 주력으로 공공기관, 기업 등 60여 곳을 대상으로 IT 솔루션 및 시스템관리(SM) 사업 등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음이다. 노루그룹 후계자가 디아이티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을 총괄하고 있어서다. 한원석(36) 노루홀딩스 전무다. 고(故) 한정대 창업주의 손자이자 한영재 회장의 1남1녀 중 장남이다.
디아이티는 원래는 한 회장의 큰누나인 한현숙(72)씨가 대표로 있던 곳이다. 하지만 2019년 4월 대표는 물론 사내 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나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당시 후임이 한 전무다.
특히 주인도 바뀐 상태다. 한현숙씨는 디아이티 지분 91.48%를 소유한 1대주주였다. 이외 지분은 계열 임원 6.22%. 자기주식 2.30%였다. 지금은 한 전무가 97.70%를 가지고 있다. 자사주 외에 고모 및 임원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계자, 개인자금 들이지 않고 지배력 확대
한 회장이 장남이 사실상 1인 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홀딩스 지분을 넘긴 이유는 어찌 보면 뻔하다. 증여 등을 통해 지주회사 지분을 넘겨주는 데는 증여세 등 적잖은 재원이 드는 만큼 우회 전략을 통해 2세의 지배력 확대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한 전무는 후계자로서 경영 보폭을 넓혀가고 있지만 아직은 지배기반이 미약한 편이다.
한 전무는 미국 센터너리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2014년 노루홀딩스에 입사, 사업전략부문장(상무보)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돌입했다. 28살 때다. 2017년 11월 전무로 승진, 현재 업무부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입사 이래 지속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현재 20개 국내 계열사 중 노루페인트를 비롯해 10개사의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반면 한 전무는 현재 보유 중인 노루홀딩스 지분이 얼마 안된다. 주력사 노루페인트를 비롯해 화학, 농생명, 물류 분야 국내 14개 계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한 전무 지분은 총 72억원을 주고 사들인 3.75%가 전부다.
2014년 4월부터 시작해 2016년 6월까지, 이어 2020년 3~4월 두 차례에 걸쳐 0.66%를 11억원를 들여 매입했다. 또한 2016년 12월에는 부친 지분 중 3.28%를 61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따라서 디아이티가 홀딩스 지분 4.51%를 확보했다는 것은 한 전무가 개인자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지주사 지분 총 8.26%를 자신의 직접적 영향권에 두게 됐다는 얘기가 된다. 한 회장이 향후에도 디아이티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홀딩스 지분 매각에 나설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