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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워치]‘건설 부실’이 촉발한 한일시멘트 숙질 재산 再분할

  • 2023.03.07(화) 07:10

[중견기업 진단] 한일시멘트⑤
원래 한일건설은 창업주의 3남 허동섭 몫
2013년 법정관리…지분 24% 휴지조각
대가 충무화학·한일개발…8개 小그룹 형성

2016년 10월, 삼촌은 모태기업 지분 일부를 넘겨주며 조카에게 힘을 실어줬다. 앞서 그 해 3월 조카가 회장 자리를 물려받으며 가업의 적통을 이은 지 7개월쯤 지난 뒤다. 

건설자재 중견그룹 한일시멘트 ‘허(許)’씨 일가의 장손(長孫) 허기호(57) 회장과 둘째 숙부 허동섭(75) 명예회장 간의 딜은 허 회장 ‘1인 체제’를 인정하는 대가로 숙질(叔姪)간 재산 재분배에 확실한 도장을 찍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황이 그렇다.      

시기상 한일건설이 도화선이었다. 당초 숙부 몫이었던 한일건설이 날아가면서 오너 일가의 계열 정리가 이뤄졌다. 현재 허 명예회장이 두 딸을 앞세워 아쉬운 대로(?) 한일개발을 비롯한 8개 계열사로 한일시멘트 ‘한 지붕’ 아래 소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다. 

허동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

창업주 3남 몫이었던 한일건설의 ‘비운’?

한일건설은 1970년 2월 설립된 삼원진흥건설이 전신(前身)이다. 1978년 5월 한일시멘트 계열로 편입됐다. ‘유엔아이’와 ‘베라체’ 브랜드로 잘 알려졌던 중견 건설사다. 2008년에는 시공순위 35위에 랭크 했다. 당시 계열사 위상도 막강해 모태 옛 한일시멘트㈜(총자산 1조3600억원) 다음으로 한일건설(8130억원)은 그룹을 대표하는 간판이었다. 

한일건설 주인이 실은 허동섭 명예회장이다. 독자 경영했다. 창업주 5남1녀 중 한일시멘트 지배주주인 ‘정·동·남’ 3형제 중 장남 허정섭(84) 명예회장이 한일시멘트, 3남 허동섭 명예회장은 대표이사 회장으로 한일건설을 책임졌다. 2003년 3월 형에 이어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면서 첫째동생 허남섭(72) 명예회장에게 한일건설을 맡기고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뿐만 아니다. 2009년 말 보유지분을 보더라도, 당시 한일건설은 지주회사격인 한일시멘트㈜가 1대주주(19.8%)였지만 일가가 이 보다 많은 23.56%를 소유했다. 허 명예회장 15.67%, 두 딸 허서연(46)·허서희(37)씨 각각 3.81%, 부인 김천애(70)씨 0.27%다. 

잘 나가는 가 싶던 한일건설에 2013년 사단이 났다. 앞서 2008년 하반기에 터진 ‘리먼 사태’가 불씨였다.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며 하나 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일건설도 2010년 6월 워크아웃이 개시됐다. 2011년 3월 허 명예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긴급히 복귀했지만 허사였다. 2012년 영업적자가 1990억원에 달했다. 

이듬해 2월 한일건설의 법정관리행(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회생계획에 따른 무상감자와 채권은행 출자 전환에 따라 대주주가 채권단으로 교체됐다. 1993년 1월 증시에 입성했던 한일개발은 그 해 4월 상장폐지됐다. 6월에 가서는 한일시멘트그룹이 완전히 손을 털었고, 허 명예회장 일가 지분도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충무화학, 2015년 허서연·서희 자매 소유로

자타공인 당초 창업주 3남 몫이었던 주력사 한일건설을 잃은 뒤 제법 알짜 계열사들이 하나 둘 허동섭 명예회장 몫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게 2년쯤 뒤다. 오너 일가, 특히 숙질간에 합의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한일시멘트가 허정섭 명예회장의 아들 3형제(기호·기준·기수) 중 장남 허기호 회장에게 세습됐듯이 허동섭 명예회장은 당시 계열 재분할을 두 딸 허서연․허서희씨의 대물림의 기회로 삼았다. 

충무화학이 시작이었다. 강원도 정선광업소를 운영하는 석회석 생산업체다. 설립 시기는 1978년 2월로 한참 됐지만, 2007년 7월 한일시멘트 계열로 편입됐다. 허씨 오너 일가의 3세들이 주축이 돼 지분을 직접 인수했다. 한마디로 충무화학은 원래는 오너 3세의 재산 증식을 위해 준비된 계열사다.

창업주 장남가의 기호·기준·기수 3형제 30.48%, 3남가의 서연·서희 자매 36.66%, 4남가의 가족기업 세우리 16.43%, 5남 허일섭(67) 녹십자 회장 16.43% 등이 2009년 주주들의 면면이다. 하지만 2015년에 가서 3남가로 주인이 바뀐다. 허기호 회장 등 5명의 주주가 지분 63.34%를 58억원에 전량 넘긴 것. 

현재 충무화학이 허서연(48.25%)·허서희(20.32%) 자매 등 일가 3명이 가족기업 세원개발(16.43%)을 합해 100%를 소유 중인 이유다. 또한 허 명예회장 일가의 소그룹은 허 명예회장은 경영에 손을 뗀 채 주요 계열사들을 대표는 전문경영인, 감사는 두 딸이 맡는 구조로 이뤄져 있는 데, 장녀가 충무화학 감사 자리에 앉은 게 2016년 1월이다.

한일건설에 비할 바 못되지만 허 명예회장 일가가 비교적 알짜 계열사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충무화학은 총자산 674억원(2021년 말)에 2015~2021년 430억~502억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영업이익은 2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흑자로 한 해 평균 23억원가량을 벌어들였다. 이 기간 일가는 14억원가량의 배당금을 챙기기도 했다.  

세 부녀 한일개발 배당수익만 56억

뒤이어 한일개발이 허동섭 명예회장 일가 소유로 들어갔다. 경기 분당에 위치한 건축·토목·조경공사 업체다. 2001년 10월 옛 한일개발㈜(옛 한일레미콘·2007년 6월 현 한일산업에 흡수합병)에서 건설사업부문이 쪼개져 설립된 한일건업을 전신으로 한다. 당시만 해도 모태 한일시멘트㈜(현 한일홀딩스)가 1대주주로서 지분 99.9% 소유했다. 

반면 2016년 말 허씨 일가가 대거 주주로 등장했다. 허 명예회장과 두 딸이다. 한일시멘트가 65억원을 받고 지분 51%를 넘겼다. 2018년 7월 한일시멘트가 지주 체제로 전환한 무렵에는 아예 세 부녀 소유가 됐다. 잔여 지분 48.9%마저 135억원에 전량 매각한 것이다.  

현재 한일개발은 허서연·허서희 남매가 각각 38.13% 공동 최대주주다. 이외 23.74%는 허 명예회장 소유로 일가가 지분 100%를 전량 보유 중이다. 아울러 차녀가 2018년 8월부터 감사직을 가지고 있다. 

한일개발은 2016~2020년 매출이 적게는 765억원, 많게는 123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흑자를 거른 적 없다. 한 해 평균 20억원가량을 벌어들였다. 반면 2021년에는 뒷걸음질 쳤다. 매출 1130억원에 영업손실 53억원으로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순익적자도 55억원이나 됐다. 

다만 세 부녀가 아쉬울 건 없어 보인다. 한일개발 주주로 등장한 2016년부터 챙긴 배당금이 적잖다. 적자를 낸 2021년에만 걸렀을 뿐 2020년까지 매년 예외 없이 적게는 10억원, 많게는 12억원 도합 56억원을 손에 쥐었다. 한일개발 또한 일가의 ‘캐시카우’로 안성맞춤이라는 방증이다. (▶ [거버넌스워치] 한일시멘트 ⑥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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