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들 3형제가 부친이 ‘한 우물’을 파며 일궈놓은 가업을 물려받은 지 어느덧 20여년이다. 때로는,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되는 게 세대교체다. 확실히 그 시간에 놓인 중견그룹이 여기 있다.
대성(大成)가(家) 3세들이 부쩍 존재감을 키워가는 최근 행보는 이런 맥락에서 범상치 않다. ‘형제의 난(亂)’을 거쳐 계열분리가 이뤄진 후 가업승계 화두가 수면 위로 떠오른 3형제의 ‘3인3색’ 스토리를 들춰볼 때가 됐다.
에너지 ‘한 우물’…한때 재계 50위권
1947년 5월, 대성은 출발했다. 고(故) 김수근 창업주가 고향인 대구 칠성동에 연탄공장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1959년 9월 대성연탄을 설립해 서울에 진출, 사업기반을 잡았다.
1964년 액화석유가스(LPG), 1968년 석유 판매사업에 진출하며 불 같이 일어났다. 기세를 몰아 1983년 1월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에너지)를 설립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서울도시가스를 인수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대마불사(大馬不死)’로 통했던 재벌들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대성은 건재했다. 재계 순위 50위권의 에너지 전문그룹으로 성장했다. 국내 계열사만 해도 25개사나 됐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때가 됐다. 2000년 들어 대성은 2대(代) 체제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창업주가 2001년 2월 86세를 일기로 별세하기 한 해 전(前)이다.
장남 대성산업, 차남 서울가스, 3남 대구가스
2000년 11월, 3자 분할 후계구도가 마련됐다. 창업주가 3남3녀 중 아들 3형제에게 대성산업, 서울도시가스, 대구도시가스 3개 주력사를 나눠 경영하도록 했다. 사실상 재산분할이다. ‘영(英)’자 돌림 ‘대·민·훈’ 3형제 김영대(82) 대성산업 회장, 김영민(79) 서울도시가스 회장, 김영훈(72) 대성홀딩스 회장이다.
또 다른 핏줄들도 이 무렵 하나 둘 분가(分家)했다. 2001년 8월 막내딸이 럭셔리 핸드백 브랜드 ‘MCM’의 성주인터내셔날을 가지고 독립했다. 김성주(68) 성주그룹 회장이다. 두 언니 김영주(76) 대성그룹 부회장과 김정주(75) 대성홀딩스 부회장이 막내 남동생의 조력자였던 것과는 행보가 달랐다.
창업주의 첫째동생 고 김의근 회장이 창원기화기공업(현 모토닉)·대성정기를 가지고 나간 것도 2000년 7월의 일이다. 2001년 4월에는 막냇동생 고 김문근 회장의 대성광업개발(현 대성엠디아이)이 계열분리됐다.
창업주가 후손들에게 섭섭지 않게 저마다 본인 몫을 쥐어주었다고 해서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막장드라마’ 뺨치는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게 재계에서는 다반사다.
2019년 불편했던 동거 마침내 마침표
2001년 2월,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올랐다. 계열지분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가 작고하자 아들 3형제가 계열분할을 놓고 서로 치고받았다. 3개월 뒤인 5월에야 최종 합의했다.
장남과 3남은 ‘대성그룹 회장’ 직함을 두고서도 신경전을 벌였다. 2010년에는 맏형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대성지주’ 사명을 사용하자 법정 분쟁으로 비화됐다. 2016년 2월에 가서야 막내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동거 생활은 2019년 4월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대성’이 해체됨으로써 법적으로 공식 마침표를 찍었다. 기업집단 명칭을 ‘대성그룹’으로 새롭게 바꿔 달았고, 현재 김영민 회장의 서울도시가스와 김영훈 회장의 대성홀딩스 계열이 함께 묶여 있다.
이제 대성가 3형제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3대 승계가 최대 화두가 됐다. ‘세습 노트’를 치밀하게 써내려가고 있고, 3세들이 몸을 풀고 있는 이유다. 선대에서 그랬듯, 비록 경영권 승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딸들도 예외가 아니다.
노트를 세차게 흔들면 다채로운 ‘스토리’가 우수수 떨어진다. 대성의 장남가 대성산업의 변함없는 절대권력자 김영대 회장과 ‘한(韓)’자 돌림 ‘정·인·신’ 아들 3형제 얘기가 노트의 맨 첫 장이다. (▶ [거버넌스워치] 대성산업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