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6일, 미국 보스턴에서 개막하는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2025(BIO International Convention 2025, 이하 바이오USA)’는 세계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참가해 글로벌 시장 진출 등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 역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바이오 도시’로 불리는 보스턴에서, 위기 극복과 도약을 위한 도전에 나섭니다. 비즈워치는 이번 바이오 USA 현장에서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국내 산업과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합니다.[편집자주]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의 형성과 성장에는 합리적 규제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규제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혁신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뢰를 확보하는 장치로 작용하며 산업 성장의 토대를 만든 것이다.
유전자 재조합 도입 논쟁, 바이오클러스터 산파
그 시작은 1970년대 유전자재조합 기술(recombinant DNA)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버드대와 MIT의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재조합하려는 시도를 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생물학적 위험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특히 바이러스나 병원균이 돌연변이를 통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인 불안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1976년 케임브리지 시의회는 리콤비넌트 DNA 연구의 일시적 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시민들과의 공개 토론과 설명회를 자발적으로 개최했다. 결국 시민·정치인·과학자가 함께 참여한 위원회에서 연구 가이드라인이 제정됐고, 투명한 규제 환경 아래에서 연구는 재개됐다. 이 경험은 ‘연구는 통제될 수 있지만, 완전히 차단돼선 안 된다’는 원칙을 남겼고, 바이오 연구에 대한 사회적 신뢰 확보라는 중요한 자산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바이오젠(1978년), 제네틱 인스티튜트(1980년), 젠자임(1981년) 등이 연달아 설립됐고 여기에 벤처캐피털 자금이 유입되면서 보스턴-케임브리지 지역은 생명과학 혁신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2008년부터 약 10년간 10억 달러 규모의 ‘라이프사이언스 이니셔티브(Life Sciences Initiative)’를 통해 연구 인프라, 인재 양성, 스타트업 지원에 집중 투자하며 오늘날의 글로벌 바이오클러스터 기반을 완성했다.
MIT에서 생명과학 및 바이오테크 산업의 역사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로빈 셰플러(Robin Scheffler) 교수는 지난 3월 출판한 논문에서 "(유전자재조합) 규제는 초기에는 저항이었지만, 이후 과학자·시민·기업 모두에게 연구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AI 규제 논란, 또다시 AI산업 꽃피울까
이러한 사회적 기술 수용 과정은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오픈AI, 구글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이 ChatGPT, Gemini 등 고성능 생성형 AI를 잇달아 출시하며 교육, 공공, 법률, 헬스케어 등 실생활 분야에 빠르게 확산되자, 동시에 사이버보안,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공정성 등의 문제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에 대응해 2024년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Massachusetts AI Hub’를 공식 출범했다. 이 허브는 기술혁신과 윤리적 AI 개발을 병행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5억 달러 규모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충, △AI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운영, △책임 있는 AI 개발 기준 마련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 케임브리지의 유전자재조합 논쟁이 불확실성을 걷어낸 뒤, 산업 형성을 도운 역사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즉, 합리적 규제는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기술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도구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우정훈 BW바이오메드 대표는 "1970년대 케임브리지의 유전자재조합 논쟁이 바이오클러스터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것 처럼, 이번 AI 논쟁과 이에 대응한 보스턴 지역의 적절한 규제는 AI 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력 생태계 구축, 대규모 자본 투자 등이 중장기적으로 함께 고민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형 바이오클러스터 성공을 위해서는
보스턴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바이오클러스터 조성'은 정부와 정치권의 단골 소재였다. 국내 바이오산업을 방치했다는 평가까지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조차 2023년 미국 보스턴을 방문해 "보스턴처럼 바이오 클러스터를 키우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국내 연구나 규제 환경은 녹록치 않다.
"신규 모달리티는 한국보다 미국 임상이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록 꽉 막힌 규제는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조건부 허용과 사후관리형 규제 모델을 통해 신기술의 발전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스턴이 모더나, 앨나일럼 등 유니콘 기업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인내가 있었다. 국내도 혁신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는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투자와 함께 기초 연구-기술사업화-자본연계-규제정비를 잇는 장기 성장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
전국 각 지역에는 바이오클러스터를 표방한 그럴싸한 건물과 실험실이 지어지고 내부에 고가 장비들이 채워졌다 결국 방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우정훈 대표는 "바이오클러스터에서 중요한 것은 시설(하드웨어)이 아닌 소프트웨어다. "라면서 "국내 여러 클러스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교류, 협력해 시너지를 내고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