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각종 규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여주기식에 그치거나 실제 도움이 되는 내용은 적다는 평가다. 특히 규제개혁은 내용과 함께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지금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과 통신, 유통, 금융 등 각 분야의 규제개혁 현주소와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일명 '원샷법'으로 불린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각종 법적인 절차 등을 단축하고 세제혜택 등을 주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선제적 사업재편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고, 중견·중소기업들은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원샷법' 추진을 예고했다. 하지만 재계의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5월중 공청회 등을 거쳐 특별법 초안을 공개하고 국회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예상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재계는 속이 타고 있다.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 제정이 늦어질수록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늦춰지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 배우자
'원샷법'의 성공사례로는 일본이 꼽힌다. 일본 정부는 침체된 주력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지난 1999년 산업활력법을 제정했고, 아베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내용을 더 강화해 지난해 1월부터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시행중이다. 이 법들이 시행된 이후 올 2월까지 총 628건의 사업재편을 지원했다.
일본은 산업경쟁력강화법이 시행된 지난해부터 5년을 집중실시기간으로 삼았다. 정책별로 담당장관을 지정해 매년 진척상황과 성과를 공표하고, 국회에 보고토록 했다. 이 법은 기업실증특례제도, 그레이존(Grey Zone) 해소제도 등 규제개혁을 위한 조치와 함께 사업재편촉진제도를 통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업재편촉진제도다. 기업의 사업재편계획이 생산성 향상과 과잉공급 해소를 입증할 경우 세제와 금융상 혜택을 일괄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이다. 사업재편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개별승인이 아닌, 업종담당 주무부처의 일괄승인으로 처리해준다. 법 시행후 벌써 15건의 사업재편이 이뤄졌다.
<사업재편계획 승인 실적(10건)>
사업자명 | 재편내용 | 지원조치 |
TV아사히, BS아사히 | 지주회사 전환 | 등록면허세 경감 |
테이블마크, 티에무 | 지주회사 전환 | 등록면허세 경감 |
BJ홀딩스 | 업체 합병 | 등록면허세 경감 |
VJ홀딩스 | 소니 PC사업 인수 | 등록면허세 경감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의 채무보증 |
유니티카 | 출자수용 (3자 신주할당, 출자전환) | 등록면허세 경감 |
라구나텐보스 | 사업분할승계 출자수용(3자 할당증자) | 등록면허세 경감 |
JAPAN 3D DEVICES | 출자수용(3자 할당증자)
| 등록면허세 경감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의 채무보증 |
토사전기철도 토사전기드림서비스 고치현교토 | 공동분할후 신설회사 설립 출자수용(3자 할당증자) | 등록면허세 경감 |
자오관광개발공사 | 모회사 분할승계를 통한 케이블카사업 일원화 | 등록면허세 경감 |
도쿄도민은행 야치오은행 | 지주회사 전환 | 등록면허세 경감 |
<특정사업재편계획 승인 실적(5건)>
사업자명 | 재편내용 | 지원조치 |
미쓰비시 중공업, 히타치 제작소 | 화력발전사업 통합한 신설법인 설립 (지분비율 65% : 35%) | 특정구조조정 투자손실 준비금, 등록면허세 경감 |
신일본제철주금, 토호티타늄 | 신일본제철주금 자회사의 모기업 EB용해로 사업 분할승계. 토호티타늄에 대한 제3자 할당증자 출자수용->티타늄 공급사업 확대 | 특정구조조정 투자손실 준비금, 등록면허세 경감 |
미쓰비시머티리얼, 히타치금속 | 미쓰비시 자회사의 히타치금속 출자 (36억엔) 수용 | 특정구조조정 투자손실 준비금, 등록면허세 경감 |
토부산업, 타케쇼 | 토부산업 냉동찜굴사업의 자회사화 및 타케쇼에 대한 제3자 할당증자 출자수용 | 특정구조조정 투자손실 준비금, 등록면허세 경감 |
미쓰비시중공업, IHI | 자회사로 항공엔진사업 양도, IHI와 일본정책투자은행에 대한 출자수용 | 특정구조조정 투자손실 준비금, 등록면허세 경감, 지정 금융기관 장기저리대출 |
한국무역협회 국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사업재편촉진제도는 산업생산성 향상과 신시장 개척을 위해 부실여부와 관계없이 정상기업의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통합지원제도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주요 사업재편 사례>
#1. 미쓰비시중공업-히타치제작소의 화력발전분야 통합 - 가스터빈 라인업 확대 및 해외지역 강점 보완을 위하여 미쓰비시(대형가스터빈/동남아·중동시장 강점)와 히타치(중소형가스터빈/유럽·아시아시장 강점)의 화력발전부서를 통합한 신설법인 설립.
#2. 소니 PC 사업분야 매각 - 수익성이 높은 게임과 모바일 사업에 집중코자 저수익 PC사업을 기업구조조정 전문펀드인 일본산업파트너즈(JIP)에 매각하고, 과거 10년간 7,900억엔의 영업적자를 낸 TV사업 분사.
#3. 라구나텐보스의 테마파크사업 재건 - 여행전문기업 HIS그룹의 자회사 라구나텐보스는 누적적자가 지속된 가마고리해양개발의 테마파크 사업 등을 인수하고 자본금 증가에 따른 등록면허세를 면제 받음. (자료 :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
◇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부는 현재 사업재편지원특별법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중이다.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를 거쳐 세부 추진방안을 확정해 상반기중 입법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이 법의 입법방향에 대한 건의문도 제시한 상태다. 주로 원활한 인수합병(M&A)를 위한 법적인 절차 간소화와 세제·금융상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상법상 주식매수청구권 제도 개선이 대표적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예상보다 많은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며 결국 합병을 포기했던 것처럼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권리가 남용되는 사례도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비상장회사의 경우 주식매수 의무기간을 지금보다 늘려줘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원활한 사업재편을 위해 현재 100%인 증손회사 지분보유율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수준으로 낮춰달라는 건의도 포함됐다. 자회사들의 손자회사 공동출자나 지주회사 강제전환 유예기간 연장 등의 내용도 요청됐다. (※아래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지원과제' 표 참고)
증권가에서는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지주회사 내부의 출자가 가능해지는 등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국회에 계류중인 금융지주회사 개정안과 맞물릴 경우 아직 순환출자 상태인 삼성이나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 이다. 그동안 재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청해왔다. 경제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법 시행이 늦춰질수록 사업재편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치권 갈등 등으로 인해 정부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국회 입법 순위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자칫 하반기 시행이라는 목표가 어긋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통해 체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기(失機)'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우려했다.
국제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산업고도화와 기업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정상기업의 상시적·선제적 구조조정 원활화를 위한 통합지원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며 "사업재편지원특별법은 인수합병 형태의 구조조정 유도, 절차 효율화와 세제지원의 일괄승인에 초점을 맞춰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대한상의가 건의한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지원과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