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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전통시장도 못살리고 소비만 위축

  • 2015.05.21(목) 11:24

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확 풀자!] 유통부문
의무휴업으로 대형마트 곤두박질..납품업체도 "시장왜곡"
국회 규제강화 또 만지작.."경쟁력보다 의타심만 키울수도"

"입사할 때만 해도 성장세가 대단했습니다. 일은 힘들어도 회사가 크는 게 보이니 보람도 있고…. 지금은 상품하나 내놓으려 해도 눈치가 보입니다. 많이 팔리면 다행인데 안그러면 아휴~. 새로 내놓는 상품이 잘 팔릴 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워낙 장사가 안되니까 팔릴 만한 상품만 가져옵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것을 발굴하는 게 우리 일인데, 아무래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몸을 사리게 되죠."

입사 5년차인 한 대형마트의 직원 최 모 씨는 매출부진이 가져온 대형마트 내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 씨는 200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대형마트에 입사했다. 그는 "경기는 안좋고, 고객들은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빠져나가고, 그런데도 영업규제는 계속되니 사양산업에 몸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흔들리는 대형마트

1990년대 등장해 전통시장 중심의 쇼핑문화를 바꿔놓은 국내 대형마트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매년 수십개의 점포를 열며 승승장구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출점규제로 신규출점은 사실상 올스톱됐고 의무휴무제 시행으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는 세월호 여파로 소비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까지 겹쳐 어려움이 더욱 컸다.

이는 대형마트 실적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마트는 지난해 매출이 0.5% 늘어난 데 비해 영업이익은 13.5% 감소했고, 롯데마트는 매출은 7.7% 줄고 영업이익은 64.3% 급감했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홈플러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홈플러스 매장 33개를 운영하는 홈플러스테스코는 평일에 쉬던 곳들이 일요일에 쉬게 되면서 지난해 5년만에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 협력사로 번진 마트 규제

경기침체로 꽁꽁 닫힌 지갑을 열고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는 고객들을 붙잡는 것은 대형마트의 몫이다.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유통업체가 제조까지 책임지는 'PL(자체부착상표)상품'을 앞세워 불황을 뚫고 있고, 홈플러스는 이익감소를 감수해서라도 매출을 늘리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가격인하 대신 품질강화를 택했다.

 

하지만 영업규제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대형마트의 하소연이다. 서울지역의 한 대형마트 점장은 "지금의 규제는 꼴찌를 돕겠다며 1등에게는 아예 출전기회조차 주지 않는 규제"라며 "쇳덩이를 달더라도 뛰게는 해줘야하는데 한달에 두번씩 출전금지라며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따른 피해는 대형마트에 끝나지 않는다. 강원도 속초에서 오징어와 명태 등의 수산물을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김 모 사장은 "마트규제 이후 매출이 15억~20억원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마트에 납품하지 못하는 물량을 가락동 도매시장으로 가져가면 물량이 한꺼번에 몰려 가격이 20~30% 떨어진다"며 "유통이라는 건 말 그대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가야하는데 어느 한쪽을 막아놓아 왜곡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장관도 인정하는 '마이너스 게임'


규제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통계를 보면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월2회 의무휴무가 시행된 2012년 전통시장 매출은 21조1000억원에서 이듬해 20조7000억원으로 감소한데 이어 지난해는 19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대형마트 의무휴무일에 전통시장이나 동네상점을 이용한다는 소비자도 17%에 불과했다. 결국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소비 자체만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도 영업규제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의무휴무와 입점규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이름 그대로 유통산업의 발전과 상생을 꾀하는 법이 맞냐는 것이었다. 당시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결국 시장 전체로 보면 이게 제로섬도 아니고 마이너스 게임에 들어가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정부가 제도를 가지고 규제를 한다는 것은 항상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김 의원의 지적에 수긍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 '표(票)퓰리즘' 국회가 문제 

 

그럼에도 국회는 경제논리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오는 11월 일몰하는 전통시장 보호구역(전통시장 경계로부터 1km 이내) 조항과 관련해 법률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의원입법 형태로 올라온 개정안에는 일몰조치를 연장하는 방안뿐 아니라 현재 규제대상에서 빠져있는 대형 아울렛 등을 겨냥해 보호구역 범위를 2km로 더 넓히는 방안도 포함돼있다. 그간 시행된 규제가 성과가 있었는지 평가는 뒤로 한 채 표심(票心)을 생각해 규제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지금처럼 규제에 의존하는 방식은 전통시장의 경쟁력 활성화는 커녕 의타심과 타성만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책임질수도 없는 사안을 방망이만 두드려 통과시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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