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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수출효자' 게임산업의 규제 '노이로제'

  • 2015.05.20(수) 10:00

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확 풀자!] 산업부문
규제로 손발 묶여, 온라인 강국도 '옛말'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매를 들어야죠. 하지만 매번 혼내기만 하고 보듬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하겠습니까. 지금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정서는 사랑없이 매맞고 자란 아이와 같습니다."

 

정책 규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한 게임사 임원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소위 '잘 나가는' 게임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외 사업이 고공 성장하고 있어 실적도 껑충 뛰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돈을 많이 벌면 왠지 불안하다고 한다.

 

언제 규제의 표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대형사들은 셧다운제와 웹보드(고스톱·포커류) 규제를 겪으면서 크게 휘청인 것을 봤기 때문에 업계에선 '튀면 안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임 업계가 규제에 대해 노이로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많이 휘둘려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이 올해로 20여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문화 콘텐츠로서 대접을 받았던 적은 드물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돌이켜 보면 당근보다 채찍이 많았다는 것이다.

 

게임을 마약 같은 중독물로 규정하려는 법안을 비롯해 게임사 매출 일부를 게임중독 치료기금으로 강제 징수하자는 법안까지, 관련 규제들이 줄을 섰다.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규제 방식 및 강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 대표 한류 콘텐츠가 규제 '단골'

 

사실 게임은 콘텐츠 산업 가운데 '수출 효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수출액은 30억5000만달러(한화 약 3조3000억원)다. 콘텐츠 산업 전체 수출액(54억달러)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지식정보 산업(스크린골프나 디지털 교육 등)과 캐릭터, 방송 등 다른 콘텐츠의 수출액을 전부 합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다. 

 

'게임 수출 1위' 타이틀은 한 두 번 일이 아니다. 온라인게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일이다. 최근 5년 사이에 출판이나 광고 산업 수출 성장이 마이너스 추세를 보인 반면, 게임 산업은 매년 10% 가량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금전적인 기여도만으로 따지면 게임은 사실상 대표 한류(韓流) 콘텐츠다.

 

그럼에도 단골 규제 대상이다. 게임이 가진 폭력성과 중독성, 사행성 같이 어두운 면이 잊을만 하면 부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규제가 '셧다운제'다. 청소년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심야 이용을 제한하는 이 제도는 현재 두개의 정부 부처가 맡아 시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소관인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 이 두개의 규제를 2중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셧다운제가 시행된 시기(2011년 11월)는 공교롭게도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역성장하기 시작한 때와 겹친다. 자타공인 온라인게임 종주국이 규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 2012년 6조783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2013년에는 5조4523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원 이상 급감했고, 이듬해에는 3% 더 축소됐다. 이 기간 글로벌 시장 규모가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과 비교된다. 

 

마침 이 시기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게임이 확산하면서 PC 온라인게임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간 이유도 있겠지만, 규제 영향을 무시 못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임사들이 규제와 감시의 표적이 되면서 손발이 묶였는데 달라진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만한 여유가 있었겠느냐란 것이다.

 

◇대형사 실적 '직격탄'

 

셧다운제는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은 해외 업체를 규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역차별 논란'을 낳기도 했다. 국내 게임은 밤 12시가 넘으면 자동적으로 접속이 차단되지만 외산 게임은 24시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업체만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살리기는 커녕, 괜히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셧다운제가 온라인 게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면 지난해 시행된 웹보드규제는 일부 게임사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정부는 작년 2월부터 고스톱·포커류 게임 결제한도를 월 30만원으로 정하고, 1회 게임에 사용하는 게임머니가 최대 3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루 10만원 이상 게임머니를 잃을 경우에는 24시간동안 접속을 차단했다.

 

이러자 웹보드 매출 의존도가 높은 NHN엔터테인먼트가 휘청였다. 게임포털 '한게임' 운영사인 NHN엔터는 규제가 시행된 이후 첫 분기였던 작년 2분기에 연결 기준으로 7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전환했다. 매출은 1198억원으로 전년보다 21.3% 줄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19억원에 그쳐 전년동기(521억원)에 비해 무려 4분의 1 가량으로 축소됐다. 회사측은 "웹보드게임 이용자가 규제 시행 전보다 40~5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게임포털 '피망'을 운영하는 네오위즈게임즈도 마찬가지다. 작년 매출(2010억원)은 전년(4428억원)보다 절반으로 뚝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70% 빠진 295억원에 그쳤다. 네오위즈게임즈측은 "작년 2월 게임법 시행령이 반영된 이후 웹보드 매출과 트래픽이 큰 폭 하락했으나 3분기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넷마블게임즈 같이 일찌감치 모바일로 눈을 돌린 업체는 그나마 위기를 넘겼으나 다른 웹보드 업체는 안이하게 대응하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라며 "주요 게임사들이 최근 전자결제 등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근간인 게임이 위축되다보니 신성장 동력을 키우는 일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눈치 보느라 골든타임 놓쳤다

 

문제는 이보다 '쎈'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는 것. 특히 지난해 발의된 이른바 '게임중독법'은 규제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법안은 게임을 마약·술·도박과 함께 4대 중독물 중 하나로 규정, 보건복지부가 규제 권한을 갖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임 업체의 매출 1%를 중독치료 기금으로 강제 징수한다는 내용의 법안도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규제도 규제지만 게임을 문화 콘텐츠가 아닌 범죄의 일종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다 보니 개발자를 비롯해 마케터나 기획자 등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 시선도 차가워질 수 밖에 없고, 이는 다시 산업 침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내 게임 산업이 위축된 건 진흥 없이 규제로 일변한 정부 책임이 크다. 최근 게임 트렌드가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급변하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앞서가기는 커녕 규제 이슈에 대응하느라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국내 게임 산업의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게임사들의 공습에 '안방'마저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핀란드의 슈퍼셀, 영국의 킹, 중국의 텐센트 등 대자본으로 무장한 글로벌 게임사들은 국내 게임 시장에 진출해 대규모 광고전을 벌이면서 토종 게임사를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규제에서 진흥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한때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시기의 경쟁력을 회복하기까지 험난한 행보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산업이 성장이냐 정체냐의 기로에 서 있는 만큼 이제라도 정부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숭실대 교수)은 "세계적으로 게임 산업에 대해 규제 일변도인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라며 "보수적인 영국과 독일, 일본을 비롯해 심지어 게임을 '전자마약'으로 여겼던 중국 조차도 최근 수년간 문화 콘텐츠로 적극 육성하면서 게임 산업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최근 정부가 모처럼 육성책을 내놓고 있으나 정치권은 오히려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서로 엇박자가 나고 있다"라며 "정부와 정치권의 일관되지 않는 태도 때문에 게임 업계 입장에서는 진정성 면에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임 업계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의 김성곤 사무국장은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이제 게이머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되고 있다"라며 "게임 산업이 과거와 달리 무한경쟁 시대로 변하고 있어 게임사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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