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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개 샴푸 규제가 더 독하네

  • 2015.05.20(수) 09:06

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확 풀자!] 산업부문
숨은 '손톱 밑 가시' 찾아 체감 규제지수 낮춰야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각종 규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여주기식에 그치거나, 실제 도움이 되는 개혁은 적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규제개혁은 내용과 함께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지금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과 유통, 금융 등 각 분야의 규제개혁 현주소와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문제> 다음 중 제품의 제조와 판매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가 더 까다로운 종류의 상품은?

 

① 사람이 쓰는 샴푸·린스
② 애완견용 샴푸·린스

 

답은 2번. 사람이 사용하는 샴푸·린스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 산업 진입장벽이 낮다. 하지만 고체 비누를 제외한 애완동물용 세정제는 '동물용 의약외품'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제품의 사용 목적에 관한 자료 ▲제품의 원료약품 및 분량·효능효과·용법용량에 관한 자료 ▲제품의 약리작용 및 규격 등에 관한 자료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제출하고 해당 제조업 및 제조품목 허가를 받아야 제조와 판매가 가능하다.

 

지난달 3일 국무조정실이 중소기업중앙회와 가진 간담회 자리. 정부가 규제로 인해 겪는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한 기업인은 "개 샴푸에 사람 샴푸보다 더 엄격한 생산과 유통 기준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느냐"며 "곳곳에 숨은 상식 밖 규제가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비상식적 규제 투성이 

 

"채소를 씻는 데 사용한 물이 공장 기계를 돌아 나온 물과 같지는 않잖아요. 인체에 해가 적고 환경오염 위험도 낮은 만큼 폐수 배출 기준을 완화해줬으면 합니다. 신선 야채를 찾는 사람이 많아져 공장 증설이 급한데 공장 폐수배출총량 규제로 1일 배출기준이 50톤 밖에 되지 않으니 라인 확대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신선야채 포장공급업체 A사 임원)

 

"택배 터미널이 주로 교외에 있고 육체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구인난이 심각합니다. 유통물류 분야에서 냉장·냉동 창고업, 육상여객 운송업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택배 터미널 분류작업에만 유독 외국인 근로자를 투입하지 못한다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 

 

기업활동의 '손톱 밑 가시'들은 현장 곳곳에 숨어있다. 정부의 규제개혁 사령탑 격인 국무조정실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 소상공인연합회 등 7개 경제단체 및 기업인 대상으로 연 '릴레이 규제개혁 간담회'에서는 기업 현장의 불만이 부지기수로 쏟아졌다.

 

대한상의와의 간담회에서는 ▲물류단지 조경조성의무 면제 ▲각종 보험계약시 모바일 서명 인정 ▲편의점 심야영업 탄력운영 ▲환경오염 방지물품 관세감면 연장 ▲화물자동차 증차제한 완화 ▲특급호텔의 교통유발계수 규제 완화 등의 건의들이 나왔다.

 

▲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세번째)이 지난 3월27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규제개혁 간담회에 참석했다.(사진: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를 만난 자리에서는 '애완동물용 세정제에 대한 의약외품 규정 제외'에 대한 건의뿐만 아니라 ▲가구류 유해물질 검사 중복규제 개선 ▲뿌리업종에 대한 입지제한 개선 등의 요구가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현장에서 발굴한 불합리한 규제 가운데는 이런 사례가 화제가 됐다. 건축법상 10마력(HP) 이상의 압축기·송풍기·단조기 등의 기계류를 소음·진동배출시설로 구분하는 데 마력이 작은 기계가 오히려 소음이나 진동이 더 큰 경우도 많아 민원이 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릴레이 간담회에 참여했던 국무조정실 한 관계자는 "기업들에게 직접 수집한 규제완화 필요 사례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봤을 때 개선 여지가 있는 것이어서 놀랐다"며 "검토 후 타당한 내용들은 각 해당 부처에 의견을 보내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실적 쫓겨 졸속 추진하면 되레 갈등 유발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9월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규제감축은 단순히 건수만 몇 퍼센트 줄였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과 기업이 체감되도록 질적인 감축개선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국조실이 최근 부쩍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런 방향의 일환이다. 재작년 9월부터는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민간합동규제개혁 추진단'도 꾸려 활동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개혁이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점수따기'식 실적주의가 우려된다.

 

실제 정부는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건의된 52건의 민원 과제 중 41건만 수용하기로 했다가 가업승계시 세제지원 확대, 면세한도 상향 등을 뒤늦게 추가해 48건으로 늘렸다.

 

실적에 쫒겨 이해 상충이나 여론 반발이 우려되는 사안들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례로 국토교통부가 '칸막이식' 업역구분 규제 축소의 일환으로 규칙개정을 통해 '소규모 복합공사'의 범위를 현행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확대하는 사안을 들 수 있다.

 

소규모 복합공사는 종합건설업체 뿐 아니라 전문건설업체(주로 하도급사)가 직접 수주할 수 있는 공사인데 이 기준을 10억원으로 올리면 전문건설업체는 시장 규모가 커지지만, 반대로 소규모 종합건설업는 설 땅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규제개혁이 건설업계 내부의 갈등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나 사옥을 매각하는 공공기관 등이 바라고 있는 호텔사업 규제 완화도 기업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인근 학교의 교육 환경을 저해할 수 있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한진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서울 송현동 경복궁 옆 특급호텔사업이 수 년째 답보 상태인 이유다.

 

한 산업 관련 국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투자나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행정규칙을 적극 개선한다는 정부 입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어느 한 쪽에 마이너스의 파급효과가 있는 개혁이라면 해당 측에 그에 걸맞는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줘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대안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전국 종합건설업체들은 지난 5월13일 오후 2시 세종청사 제3주차장에서 '소규모복합공사 개악 저지! 전국종합건설업계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대한건설협회)

 

■ 기업하기 좋은 나라 '5위?'..현실은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뤄졌다. 처음으로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설립한 게 DJ정부 시절인 1998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정부가 가장 좋아하는 지표는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다. 이를 보면 지난 10년여간의 우리나라 규제환경 변화는 괄목할만하다. 과거 20~30위권에 머물던 한국은 작년 종합 5위까지 뛰어 올랐다. 총 189개국 중 싱가포르가 1위였고, 이어 뉴질랜드, 홍콩, 덴마크 순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의 기업 환경이 잘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슷한 성격의 기업환경 평가 중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 144개국 대상)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제경쟁력순위(World Competitiveness Ranking, 60개국 대상)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26위에 그쳤다.

 

이런 결과의 차이는 우선 각 조사의 방법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 세계은행은 전형적인 규제 영역을 대상으로 허가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절차의 수 등을 지수화해 비교한다. 하지만 WEF나 IMD는 통계 지표에 기업인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기업의 전체적 부담수준을 파악하기 때문에 규제의 질적인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 정부가 세계은행이 관심을 가진 전형적 규제들을 개선하는 데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규제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의미"라며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선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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