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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쓰나미]②한국 제조업 '전전긍긍'

  • 2015.06.04(목) 07:51

감내 가능한 원-엔환율 '924원'
일본기업, 대규모 설비투자·M&A 나서

엔화 약세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그 충격이 국내경제와 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당장 수출전선은 물론이고 중국 관광객 감소 등 내수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문제는 '엔저 쓰나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환율시장 전망과 국내 제조업 상황, 대응방안 등을 정리해본다. [편집자]

 

엔저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제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일부 제조업종은 이미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다. 여기에 일본 기업들이 엔저 효과로 챙긴 이익을 바탕으로 상품 가격 인하에 들어가면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기업들은 고사위기에 몰리게 된다.

 

◇ '엔저, 감내할 수준 넘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해외시장에서 일본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래시 감내할 수 있는 엔화 환율'이 평균 924원으로 조사됐다. 현재 원엔 환율이 900원선 아래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상황이다.

 

업종별로는 철강과 석유화학, 기계, 음식료, 자동차 부품, 조선 등이 어려운 상황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 감내할 수 있는 엔화 환율은 철강이 963원으로 가장 높고, 석유화학 956원, 기계 953원, 음식료 943원, 자동차‧부품 935원, 조선‧기자재 922원, 반도체 918원 순이다. 정보통신‧가전(870원), 섬유(850원) 업종 정도만 여력이 남아있는 상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그동안 수출단가를 인하하지 않은 일본기업들은 이익을 늘려 연구개발 투자, 설비투자, 인수합병 확대 등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는 공격적인 가격인하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대한상의 조사결과 일본 기업의 가격공세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음식료’ 부문으로 나타났다. 먹거리 가격의 미세한 변화에도 수출물량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출경합중인 일본제품이 10%가격을 낮춘다면, 해당 수출물량은 몇 퍼센트나 준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11.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 음식료가 18.7%로 가장 높았고, 철강(15.1%), 조선‧기자재(13.3%), 자동차‧부품(12.4%), 유화(10.6%), 기계(9.2%), 정보통신‧가전(9.2%), 섬유(9.1%), 반도체(8.1%) 순으로 조사됐다.

 

※대한상의가 소개한 엔저 피해사례

 

-선박용 엔진부품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중인 전북의 한 기업은 “엔저이후 일본 조선사들이 자국 협력업체로 거래선을 갈아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만 해도 1kg당 2달러 가격을 쳐 주었는데, 몇 달전에는 1.7달러, 지금은 1.3달러까지 가격을 깎아올 것을 요구한다. 평소 30억원 일본수출이 14억원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제조기계를 만드는 충남의 한 기업도 중국시장 대형장비 입찰시 일본업체 저가격공세로 입찰에서 밀리고 있다. 수출물량도 수출컨테이너로 20%가량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바이어들에게 일본처럼 가격을 깎아주는 수밖에 없는데, 고비용 저효율 요인은 없는지 협력업체 납품단가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용 화학제품을 만드는 광주의 한 기업도 “엔저로 일본에는 거래처 유지를 위해 마진없이 팔고있고 다른 시장에서는 거래처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20%가량의 수출감소를 겪고 내린 결론은 5% 가격인하정책”이라고 말했다.

 

-한 금속기업 관계자는 “최근 유럽시장에서 일본이 가격으로 치고 들어온 적이 있다”며 “하지만 한번 점유율을 빼앗기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물량을 줄이지 않고 팔수록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한 중견기업은 “미국 현지에서 일본 야쿠르트와 경쟁하는데 많이 밀리고 있다”며 “일본 현지에서의 경쟁은 더 어려워 수출물량이 3분의1 토막 난 상황”이라고 밝혔다.

 

◇ 일본기업, 강해지고 있다

 

실제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제조업은 엔화 약세로 일본기업들의 이익이 커지고 있는 반면 국내업체들의 이익규모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일본과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식시장과 기업이익 측면에서 한국, 일본간 뚜렷한 차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이익의 경우 일본은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한국기업들의 이익성장세는 답보상태"라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기업들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18%나 줄었고, 최근 발표된 5월 판매 역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미국판매는 전년에 비해 10% 감소했고, 중국시장에서 성적도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S6 판매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은 그동안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올들어 대대적인 설비투자나 해외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변화가 현상유지에 급급한 국내 주력 제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팀장은 "일본기업의 이익확대가 궁극적으로 체질이나 제품력 강화로 이어지면서 국내 수출이나 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엔화 약세 등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될 수 있는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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