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터미널 매각을 둘러싸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간 갈등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직후 박삼구 회장이 형제간 갈등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다.
이들 형제간 갈등이 다시 불거진 것은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을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기업에게 매각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내 금호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삼구 회장은 합병회사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다지는 동시에 금호타이어 인수를 위한 채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이 주주로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금호터미널 매각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입장이다.
◇ 박삼구 회장의 셈법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9일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금호기업에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2700억원으로 회계기관의 공정한 가격산정을 통해 결정됐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이라는 것이 아시아나항공의 입장이다.
다만 금호터미널을 인수한 것이 금호기업이라는 점은 주목을 받았다. 금호기업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세운 회사로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4일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한다고 밝혔다. 금호터미널이 금호기업을 흡수하는 형태다. 이에따라 금호터미널은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에서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으로 위치를 바꾸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병이 박삼구 회장의 지배구조 강화와 함께 금호타이어 인수를 위한 사전작업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금호터미널이 약 3000억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 터미널 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합병회사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금호기업을 세우며 7228억원의 인수대금중 1500억원 가량만을 자체자금으로 충당했다. 나머지는 NH투자증권이 주선한 신디케이트론, 상환전환우선주 등을 통해 조달했다. 외부로부터 조달한 자금비중이 높다는 점은 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탄탄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자체적인 수익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금호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금호산업의 경영상황상 대규모 배당 등이 어렵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금호터미널의 현금과 자산 등을 활용하면 지금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특히 채권단이 조만간 금호타이어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박 회장 입장에서는 자회사중 비교적 우량한 금호터미널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관측된다.
금호타이어 지분 42.1%를 보유중인 채권단은 이르면 6월부터 매각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지만 금호타이어 인수가격이 높아질 경우 자금조달에 또 다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예상이다.
◇ 박찬구 회장의 반발
금호터미널의 매각과 합병이 결정되자 박찬구 회장이 맡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은 반발한 상태다. 금호석유화학은 9일 아시아나항공에게 금호터미널 주식 매각과 관련된 사항들의 질의와 자료제공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 지분을 금호기업에 매각한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 및 합병이 사실상 차입인수(LBO) 형태로, 법원이 수차례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한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금호석유화학은 "특히 금호기업과 같이 부채가 과다한 ‘특수목적회사(SPC)’와 우량한 자산을 가진 금호터미널이 합병하는 방식은 금호터미널의 경우 실질적인 자산증가없이 금호기업의 채무를 부담하게 될 뿐으로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찬구 회장측은 이번 금호터미널 매각이 정상적인 인수합병이 아닌 현금자산 이용목적이고,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알면서 박 회장의 개인회사인 금호기업에 매각을 한 만큼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질의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며 "답변 내용에 따라 향후 대응방안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