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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에서 '합병' 이슈로…본격화되는 창과 방패 대결

  • 2017.05.23(화) 18:44

[삼성 이재용 재판]중간점검(上)
단독면담 대화내용 관건…관련자들은 부인
특검, 승계 문제 주목했지만 증거제시 미흡

‘삼성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단지 갓끈을 고쳐 맨 걸일까, 아니면 오얏(자두)을 딴 걸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순실 게이트 특검’ 재판이 반환점을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시기(2월말)부터 따지면 벌써 3개월 가까이 흘렀다.

재판 진행 상황을 보면 당초 혐의 입증을 자신했던 특검은 아직까지는 결정적 물증이나 증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변호인측은 특검이 내세운 증인이나 진술조서 등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특검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즉, 현재까지 이 부회장 재판은 특검과 변호인측의 공방만 치열할 뿐 알맹이 없는 소모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재판이 길어지고 있지만 결과를 쉬이 속단할 수 없게 하는 이유다.

 


◇ 단독면담 3차례…진실은 안갯속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느냐 하는 것이다. 

특검은 총 3차례(2014년 9월·2015년 7월·2016년 2월)에 걸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단독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등을 이 부회장에 요구하고, 이 부회장은 그 대가로 경영권 승계 등 삼성 현안과 관련된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단독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며 질책했고 원한 걸 얻은 뒤에는 "고맙다. 영재센터에도 지원하라"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게 특검이 밝힌 내용이다.

변호인측은 특검의 뇌물 논리에 맞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강요로 인한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3차례의 단독면담 당시 어떠한 대가 관계 합의나 청탁을 한 사실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독' 면담이 말해주듯 실제 이런 대화가 오고갔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수첩이나 박 전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된 말씀자료에 삼성의 현안 관련 내용이 담겨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 모두 이 같은 청탁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안 전 수석은 지난달 열린 최 씨 공판에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첩 내용도 처음 보는 것 같다”며 핵심 증거를 부인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도 지난 17일 열린 1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에게 말씀자료가 전달된 것은 맞지만 실제 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정황만 있고 물증이 없다

뇌물수수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특검은 삼성의 최 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것이라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특검이 지난해 12월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올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의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삼성의 승계문제를 돕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입증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를테면 국민연금은 2015년 9월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합병비율이 국민연금에 불리하게 나왔음에도 합병을 찬성한 이유가 뭔지를 캐기 위해서였고, 공정위는 합병 이후 불거진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삼성측 입장을 반영해 삼성물산 주식을 덜 팔아도 되게끔 도와준 배경을 파악하려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한마디로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을 서둘러야 했던 게 이번 사태의 시작이자 최종목표였다는 게 특검측 판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특검의 시각에도 맹점이 있다. 즉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지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변호인측은 이번 재판에서 "경영권 승계라는 개념 자체도 모호한 것이다. 합병이 무산된다고 경영권 승계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특검이) 언론에서 회자되는 수준의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편 자체를 잘못된 일로 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경영투명성 확보와 주주가치 극대화 등 삼성이 댈 수 있는 명분은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엘리엇 등 외국자본의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문제나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문제도 재계나 학계에서 공감을 나타내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검은 이를 부정한 청탁과 연관지었다. 이 때문에 기업인이 경영을 하면서 느낀 고충이나 의견 제시까지 형사 처벌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점점 치열해지는 법리 공방

이 부회장에 대한 공판이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모두 11명. 그간 삼성의 승마지원과 관련한 증인들이 주로 나왔고 지난주부터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증인들이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특검과 변호인측을 당혹케하는 진술도 여럿 나왔다.

비덱스포츠 재무담당 직원을 지낸 김 모씨는 ‘삼성에서 최 씨 모녀에게 말을 사준 것 같다’는 취지로 특검에 진술했으나 지난 10일 증인으로 나와선 “특검 사무실에서 정황을 검사님이 얘기해줬고 그 부분에 대해 부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검의 얘기를 듣고 확인해준 것이지 정확히 내용을 알았던 건 아니라는 답변인 셈이다.

지난 19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한 일성신약측 관계자들이 나와 “삼성이 합병찬성을 대가로 돈을 받지 않고 사옥을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증언해 특검과 변호인간 공방이 벌어졌다.

 

지난달 7일부터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된 이래 매주 3차례 강행군을 이어가는 가운데 특검의 창과 변호인단의 방패가 부딪힌 치열한 법리 공방은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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