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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재단워치]④삼성, 꺼지지 않는 불씨

  • 2017.12.05(화) 17:08

삼성문화재단·삼성생명재단, 지배구조 속 무시못할 영향력
순환출자 해소 '도우미' 역할도…이재용 승계 땐 사용안해

 

재계 1위 삼성이 공익재단을 만든 건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10억원 상당의 주식과 부산 용호동 소재 임야를 출연해 만든 게 삼성문화재단이다. 현재 리움미술관·호암미술관을 운영하는 재단이다.

당시 쌀 한가마(80㎏) 가격이 3700원 하던 때였으니 어마어마한 금액이 재단에 투입됐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재산 3분의 1을 삼성문화재단에 기부하고, 국보와 보물 50여점을 포함한 2000여점의 개인 소장품을 재단에 내놓았다. 고 이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에는 당시의 심정이 이렇게 기록돼있다.

"각고면려(刻苦勉勵) 끝에 쌓아올린 재산을 세상에 던지는 심경은 만연(滿年)한 딸을 출가시키는 마음 그대로였다."


"시집보내는 딸" 그때 그심정

개인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그의 기부를 보는 외부의 시선이 호의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국세청과 감사원은 1974년 합동조사반을 꾸려 삼성문화재단을 세무조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공익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내용이 흥미롭다.

"정부가 삼성문화재단에 대해 전례없이 철저한 세무조사를 하게 된 것은 이 문화재단이 설립목적과 달리 영리행위를 하고 있으며, 사실상 변칙상속의 방법으로 재단이 운영되고 있고, 상당한 탈세가 있지 않았나 하는 유력한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74년 10월3일)

지금은 그 때의 자금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절세와 탈세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도 쉽진 않다. 분명한 점은 기부 재산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전혀 물지 않은 법의 허술함 탓에 재벌의 우회로(공익재단을 통한 부의 대물림)를 차단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일정비율을 초과해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주식에 과세하는 법규정은 1990년 상속증여세법 개정으로 마련됐다.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1980년대 후반 매년 6~7개의 재단이 새로 설립됐는데, 이를 재벌들의 선의로만 보기에는 께름칙하다는 주장이 뒤늦게 불붙었기 때문이다. 공익재단의 설립운영을 규정한 법률이 제정된 시점(1975년)부터 따지면 강산이 한번 반이나 바뀐 뒤에야 외양간을 고친 셈이다.

 

 

◇ 허술한 그물망, 뒤늦은 수습 

현재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공익재단은 삼성문화재단를 비롯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꿈장학재단, 호암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삼성언론재단, 삼성의료재단 등 8개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꿈장학재단 4곳이 삼성 계열사 주식을 보유해 주목받는 곳이다. 이들 4곳이 보유한 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화재·삼성SDS 등 삼성 계열사의 지분가치(2016년말 시가기준)는 3조1000억원이 넘는다.

 

특히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계열사 지분가치의 80% 가량이 몰려있는 핵심 중 핵심이다. 둘 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부터 재단이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

두 재단의 비중은 삼성생명 지분구조에서 두드러진다. 현재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의 지분을 각각 4.7%, 2.2% 보유 중이다. 이 부회장의 지분이 0.1%에 불과한 것에 비춰보면 두 재단이 삼성생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삼성생명은 단일 주주로는 국민연금 다음으로 많은 삼성전자 지분(7.6%)을 갖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이 부회장이 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수조원에 달하는 계열사 지분을 실질적으로 확보했다며 날을 세우는 것도 '재단→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와 무관치 않다. 재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재용 승계방식은 달랐다

하지만 삼성의 공익재단이 바깥에서 보는 것만큼 지배구조의 화룡점정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지분 17.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포함하면 40% 가까운 지분이 그의 편에 있는데 구태여 공익재단이라는 고전적 방법을 동원해 지분확보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공익재단을 활용해 우회적인 지분승계를 한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알려져있다. 고 이 창업주가 삼성문화재단에 주식을 출연한 뒤 재단이 이건희 회장에 되파는 방식으로 지분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이 부회장에 대한 승계작업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에는 활용되지 않았다. 여론의 주목을 끄는 공익재단 대신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라는 새로운 카드로 그룹을 승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일로 2007년말 특검 수사를 받는 등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일부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을 끌어내면서 이 부회장의 지분승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수완을 발휘했다. '삼성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한성대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조차 2015년 정치권에서 논의된 이른바 '이학수법(특정범죄수익환수법)'에는 이중처벌과 소급입법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은 공익재단을 활용한 우회상속 논란에서는 벗어나있다.   

 

◇ 삼성생명재단을 겨누는 공정위 '칼끝'

꺼진 불씨였던 삼성의 공익재단 문제는 지난 8월 김상조 위원장이 "재벌 공익재단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뒤 다시 타오를 기세다. 이번엔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주요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순환출자를 해소하려고 지난해 2월 삼성물산의 주식 200만주를 3060억원에 사들였다. 이를 통해 확보한 지분율(1.1%)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공익적 목적에 써야할 재원을 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푸는데 활용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안이다.

당시 김 위원장이 소장으로 있던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은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해소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는커녕 오히려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 매입해 공익법인의 비중을 늘렸다"며 "삼성물산 지분을 즉각 처분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삼성 입장에선 법정에서 삼성물산 합병건의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도 전인데 재단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익재단이 편법적인 상속증여나 우회적인 기업지배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범위 내 정부의 제약은 불가피하다"며 "공익재단이 특정법인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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