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국내 조선사들은 길고 어두웠던 ‘수주절벽’이라는 터널 탈출에 성공했다. 연초 세웠던 수주 목표치를 달성한 것. 하지만 유종의 미라고 하기엔 왠지 찜찜하다. 연말 잔뜩 기대했던 입찰에서 중국과 싱가포르 조선사에 밀렸다. 생존을 위한 수주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이래저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 조선 빅3, 할 만큼 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는 올 들어 지금까지 총 168억8000만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이는 역대 최악의 수주절벽 상황을 겪었던 작년(79억5500만달러)보다 2.1배 증가한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수주절벽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긴장감이 남아있었지만 다행히 얼었던 상선 발주시장 분위기가 녹으면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이 중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연초 세웠던 수주 목표치를 채우는데도 성공했다.
맏형인 현대중공업 조선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는 지금까지 75억6000만달러 규모의 수주를 따내 목표치 75억달러를 넘어섰다. 현대중공업이 34억2100만달러를 수주했고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각각 19억9100만달러, 21억5000만달러 규모의 선박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67억4000만달러를 수주해 목표치(65억달러)를 초과달성 했다. 단일 조선사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주성과를 얻었다.
25억8000만달러 규모의 선박을 수주한 대우조선해양은 자체적으로 세웠던 목표치(45억700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만 연초 채권단이 실사를 통해 설정했던 수주 예상치 20억달러는 넘어선 것으로 경영 정상화 과정을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 막판 수주 실패가 남긴 긴장감
수주 목표 달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조선사들이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평가하기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국내 조선사들은 올 상반기 저가공세를 펼치던 중국 조선소와의 수주 격차를 지속적으로 줄였고, 1~5월 누적 기준으로는 중국을 앞서며 세계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LNG선과 VLCC(초대형유조선) 등 기술력을 요하는 선박을 중심으로 발주가 늘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경쟁에서 앞섰던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목표 달성은 물론 연말까지 얼마만큼의 초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불안정한 국제유가 등의 영향으로 선주사들의 발주가 줄었고, 해외 조선사들과의 경쟁도 심화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특히 연말 기대를 모았던 수주경쟁에서 국내 조선사들이 연이어 고배를 마신 점이 아쉽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 스타토일이 발주한 5억7000만달러 규모의 해양플랜트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싱가포르 조선사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물거품이 됐다.
이와 함께 팬오션이 발주한 VLOC(초대형 광석운반선) 6척도 저가공세를 무기로 한 중국 조선사가 수주했다. 이번 발주는 세계 최대 광산업체 발레(Vlae)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 동안에는 현대중공업이 해당 선박 수주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번 선박 역시 국내 조선사 수주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최종적으로는 중국이 가져가게 됐다.
연말 치열했던 분위기가 이어져 2018년에도 선박과 해양플랜트 등 수주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메이저 오일 기업을 중심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재개되고, 환경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면서 수주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싱가포르 조선사,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조선사들과의 경쟁이 심화돼 향후 수주 시장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