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비슷하다. 삼성중공업은 2016년 1조1000억원이라는 자금을 수혈한 뒤 다시 1조5000억원이 더 필요해졌다.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자 "회사가 더 나빠진 아니냐"는 핀잔이 시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르다. 그때는 수주가 최악이었고 지금은 조선소에 일감이 바닥난 게 문제다. 고정비를 유지할 매출이 가장 우선인 이유다.
그야말로 수주 보릿고개다. 그래도 더 나빠질 것은 없다는 게 내부 판단이다. "굳이 따져 보지 않더라도 그 때보단 지금 상황이 훨씬 낫다"는 게 지난 12월 취임한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의 말이다.
▲ 삼성중공업 남준우 사장(왼쪽)과 정해규 전무(오른쪽)가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올해 사업전망을 밝히고 있다.(사진: 삼성중공업) |
"지금 가장 어려운 건 물량부족이다. 그래서 일감 확보가 최우선이다. 고정비가 회사 아킬레스 건이 됐다. 그래서 올해 수주 82억달러는 기필코 달성하려고 한다. 그러면 수주잔고가 14조원, 2년치 물량이 된다. 그 뒤에는 이익이 되는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 셔틀 탱커 등 물량을 선별해서 수주할 수 있을 거다."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이 취임 후 한달도 되지 않아 공개석상에 섰다. 회사 안에서 돈 걱정을 책임지는 정해규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를 대동하고서다. 취임 인사라기보다는 암울한 올해 실적과 대규모 유상증자를 앞두고 걱정스러운 시선이 섞인 업계와 자금시장 분위기를 되돌려 보겠다는 뜻이 강하게 비친 자리다.
남 사장은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9년에는 매출을 7조원 수준으로 회복하고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5억달러까지 줄어든 수주 탓에 올해 매출은 5조1000억원 정도에 그치고, 영업손실도 약 2400억원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장 조선소장 출신인 그는 내년 흑자 전환의 배경으로 ▲수주 실적 개선에 따른 매출 증가와 그에 따른 고정비 부담 감소 ▲고부가가치 특수선 수주 증가에 따른 수익성 개선 ▲해양플랜트 분야의 독보적인 경쟁력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한 자구노력 지속 등을 강조했다.
남 사장은 올해 연간 수주목표 '82억달러'는 "무조건 수주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55억달러는 조선 부문, 27억달러는 해양 플랜트에서 수주한다는 게 회사 계획이다. 일단 수주에서 '양(量)'을 확보하고 뒤이어 '질(質)'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는 "내년부터 선박평형수 규제와 2020년에 적용되는 황산화물 관련 규제 등이 앞으로 대규모 선박 발주를 이끌어 내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며 "선령(船齡) 15년 이상 선박은 이런 규제를 맞추기 위해 추가 장치를 장착해야 하는데 이 비용보다 폐선(廢船)하고 새로 발주하는 게 경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 사장은 삼성중공업이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가장 큰 '수업료'를 치른 해양플랜트 시장 회복에도 기대를 걸었다. 그동안 손실을 냈지만 사업 과정에서 쌓은 리스크 관리 역량이 차별화된 경쟁력이 됐다는 것. 그는 "북해 연안 시장점유율 43%를 차지하고 있는 걸 기반으로 시장 우위를 더 강화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 이후에도 대형 해양플랜트를 지속적으로 수주하며 설계, PM(프로젝트 매니징) 분야의 인력 규모를 유지해왔다. 이는 지금까지 인건비 등 고정비를 크게 줄이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유가 회복과 함께 발주가 본격화될 북해, 서아프리카, 호주 등지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이 인력이 다시 밑천이 될 수 있다는 게 남 사장 생각이다.
남 사장은 "2011년 쉘(Shell)의 프렐류드 FLNG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지난 7년간 7건의 대형 해양공사를 연속적으로 수행해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 왔다"며 "그 결과 오일 메이저를 비롯한 시장 참여자들이 삼성중공업을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절대 강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은 서(西)아프리카에 유일한 제작장을 갖춘 해양플랜트 업체이기도 하다.
▲ 삼성중공업 남준우 사장(왼쪽)과 정해규 전무(오른쪽)가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올해 사업전망을 밝히고 있다.(사진: 삼성중공업) |
남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조선산업을 시찰한 것을 두고 "조선업 재건에 힘을 싣고 업계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채권단이 매우 심각하게 대출금 회수에 나서는 이를 천천히 조절해 주고, 금융권이 선박 건조 사업에 필수인 리펀드개런티(RG) 발급을 기피하지 않으면 수주 목표를 채우는 데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연말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임원수와 조직을 기존보다 30% 축소해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했다"며 "외부 여건이 개선된다고 해서 안주하지 않고 올해도 휴직, 임금 반납 등 시황에 기반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중공업 사업 정상화 선결과제가 될 유상증자는 잘 성사될까? 남 사장과 CFO 정 전무 등 회사 경영진은 성공을 줄곧 낙관했다.
정 전무는 "세계적 조사기관들도 해양플랜트 시장이 2020년에 호황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등 좋은 전망들이 점점더 우세해지고 있다"며 "올해 2400억원 영업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매우 보수적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어서 주주들도 이번 증자에 참여하는 게 재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