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임기 2년을 남기고 사의를 표하면서 창립 50주년을 보내고 전열을 가다듬던 포스코 내부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빠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권 회장이 포스코의 경영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터라 갑작스러운 중도 하차는 당혹스럽다는 안팎 반응이 적잖다.
일단 권 회장은 후임자 선임 때까지 직책은 유지할 예정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다음 수장을 맞을 때까지 주요 사업 투자결정이 미뤄지는 등 사업 조율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초 구성이 마무리된 '권오준 2기' 체제 그룹 사장단 및 임원진도 후임 수장 인선에 따라 적잖은 폭의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이명근 기자 qwe123@ |
◇ "이제 뛰어야 할 시기에…"
작년 포스코는 4년에 걸친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 성과를 냈다. 매출은 60조6551억원, 영업이익은 4조6218억원을 기록했는데, 각각 전년대비 14.3%, 62.5% 늘어난 규모다. 2014년부터 국내외 계열사 80여개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고도 거둔 실적이라 안팎에서 모두 높이 평가받았다.
권 회장은 재임 '1기(2014~2017년초)' 시절엔 전임 정준양 회장 때 비철강부문 확장 기조와 각종 인수합병(M&A)으로 외형을 키우며 나타난 부작용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작년 초 연임에 성공한 뒤 '2기(2017~2020년초)' 체제를 시작하면서부터 포스코 다시 시선을 철 바깥으로 돌리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리튬 사업이다.
올해는 이런 신사업이 더욱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포스코 그룹 전체로 4조2000억원, 비철강부문만 1조3000억원 규모 투자 실탄을 쟁여두고 있었다. 미래성장위원회 등 그룹사 협의기구를 통해 차세대 성장사업 발굴을 강화하고 사업추진의 유연성도 높이겠다는 게 권 회장 전략이었다.
권 회장은 후임 인선까지 직을 유지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의를 표한 상황인 만큼 적극적 의사 결정에는 한계가 있다. 후임이 오기까지 이르면 2~3개월 걸릴 걸로 예상되지만 워낙 정치권 입김을 많이 타는 포스코 수장 자리다 보니 선임은 더 지체될 수 있다. 사실상 경영공백이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변수가 커진 상태다. 포스코로서는 볕이 드나 했더니 한파가 예고된 셈이다. 권 회장은 현재 세계철강협회(WSA) 부회장으로 올해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이 역시 불투명해졌다. 글로벌 철강시장 마찰을 조율하면서 국내에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 위치도 잃게될 수 있다는 의미다.
◇ 후속인사 '일파만파'
권 회장은 지난달 초 그룹 사장단 인선도 마무리했다. 연임 뒤 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경영 안정을 위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였다. 포스코건설에는 그룹 '재무통'으로 이름난 이영훈 사장, 포스코켐텍에는 가치경영실장 출신 최정우 사장이 선임됐다. 포스코에너지에는 박기홍 전 기획재무부문장, 포스코강판에는 하대룡 전 전기전자마케팅 실장이 사장으로 자리했다.
포스코ICT와 포스코대우 경우 권 회장 임기 중 호흡을 맞춰온 최두환, 김영상 사장이 재선임됐다. 포스코에는 등기이사로 오인환 사장(철강부문장), 장인화 부사장, 유성 부사장이 재선됐고, 새로 전중선 포스코강판 사장이 선임돼 있다.
하지만 수장이 바뀌면 권 회장이 그려놓은 그룹 진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외부에서 후임자가 온다면 그야말로 예상할 수 없는 판이 벌어질 수 있다"며 "내부 출신이라면 조직에 충격은 덜하겠지만 연쇄적인 인사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 회장은 이날 후임자에 대해 "열정적이고 능력 있고 젊은 후임자에게 경영을 물려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내부 인사 가운데 오인환·장인화 포스코 사장, 포스코켐텍 최정우 사장, 포스코 인재창조원 황은연 전 원장 등이 물망에 오른 것으로 거론된다. 여지가 크지 않지만 외부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권 회장이 물러나는 상황이나 선례를 볼 때 신임 회장은 정치권에서 모종의 '승인'을 받은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며 "승계협의회(카운슬)라는 기구 밖에서도 여러 회장 후보들의 물밑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