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웃을 성적표는 아니다. 그런데 마냥 울상도 아니다. 올해 1분기 10년래 최악 수준 실적을 받아 든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 얘기다. 부진한 실적이 그룹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더한다. 과거 삼성물산은 옛 제일모직과 합병 직전 '일부러 망가뜨렸다'는 의혹이 나올 정도로 실적이 좋지 않았다.
또 하나는 '역(逆) 기저효과'다. 현대차그룹 실적 악화는 수 년째 지속된 것이지만 작년에 특히 좋지 않았다. 중국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후폭풍은 작년 4월 본격화됐다. 작년 1~3월보다 올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고, 4월 이후에는 어지간하면 작년보다 실적이 나쁘기 어렵다. 그룹 재편이 이뤄지는 2분기 이후엔 쉽게 '회복'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 작년만도 못했다…현대차부터 줄줄이 '추락'
지난 1분기 현대차그룹 주요 7개 계열사(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현대제철·현대건설) 영업이익(연결기준)은 총 2조693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에 기록한 3조1310억원보다 33.9% 줄어든 규모다.
작년 한 해 전체 영업이익은 10조3984억원이었는데 이는 재작년보다 26.5% 감소한 것이었다. 올해 1분기는 여기서 3분의 1 더 줄어든 것이니 이를 감안하면 실적 하락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사업 몸집부터 전체적으로 줄었다. 1분기 7개사 매출액은 57조62억원으로 60조403억원이었던 작년 1분기보다 5.1% 감소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작년 1분기 5.2%였지만 올해 같은 기간엔 3.6%로 1.6%포인트 낮아졌다.
그룹 맏형 격인 현대자동차부터 부진이 심했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681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5% 급감했다. 매출은 22조4366억원으로 4.0% 감소했다. 작년 1분기 5.4%였던 영업이익률은 3.0%로 하락했다.
자동차에서 나온 매출은 17조3889억원으로 1~3월 판매는 총 104만9389대였다.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1.7% 감소한 것인데, 해외(수출선적 및 현지법인 판매 포함)는 2.9% 줄어든 87만9480대, 국내는 4.5% 증가한 16만9203대였다. 환율이 하락한 영향으로 원화로 적는 장부에는 매출과 이익 감소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이런 실적을 두고 현대차 측은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불확실성을 덜기 위해 현대차그룹 출자구조 재편을 추진 중"이라며 "경영 투명성을 한층 제고해 완성차 업체로서 회사 본원적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 악화를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근거로 삼고 있는 셈이다.
기아자동차는 매출 12조5622억원, 영업이익 3056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매출은 2.2%, 영업이익은 20.2% 감소한 것이다. 다만 직전인 작년 4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3.4% 줄었지만 영업익은 1.1%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2.4%로 전년동기보다는 0.6%포인트 하락한 것이지만 직전 분기보다는 0.1%포인트 올랐다.
판매량은 국내에서 전년동기 대비 2.4% 증가한 12만3771대, 해외에서는 0.3% 감소한 52만1724대였다. 전체적으로 전년동기 대비 0.2% 증가한 64만5495대다. 현대차보다 먼저 회복이 나타났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판매 부진을 벗어낫다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 당시 한천수 기아차 재경본부장은 "분할합병 당사자는 아니지만 현대모비스의 핵심부품을 적용해 완성차를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으로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편 과정에서 보유 중인 기존 모비스 지분을 대주주에 매각하고, 대주주의 합병 글로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것에 대해서도 "모비스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부담은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며 다만 "합병 글로비스 지분 매입 시 물류와 CKD(반제품조립)사업, 애프터서비스(AS) 및 모듈사업에서의 이익을 공유해 안정적 배당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인 현대모비스는 1분기 매출 8조1943억원, 영업이익 449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1.6%, 32.7% 급감한 것이다. 존속법인에 남는 핵심부품 사업 매출은 2조4097억원 이었고, 일반모듈과 AS 매출은 각각 4조407억원, 1조7439억원이었다.
모비스는 이번 실적과 함께 올해 25조원으로 예상되는 존속 모비스 매출 규모를 매년 8%씩 성장시켜, 2022년에는 36조원, 2025년에는 44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도 현재까지 중국 시장서 4억2300만 달러의 핵심부품을 수주했는데, 이는 작년 전체 수주 규모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것이란 설명이다. 올 한 해 중국 핵심부품 수주목표는 10억7000만달러로 내걸었다.
◇ 비교적 선방한 현대글로비스·현대엔지니어링
지배구조 개편의 다른 한 축인 현대글로비스는 여타 계열사들에 비해 1분기 실적 부진이 덜했다. 글로비스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6.7%)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23.3%) 등 대주주 지분율이 약 30%다.
글로비스 매출은 3조7479억원, 영업이익은 1505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는 5.8%, 21.5% 감소했지만, 영업이익률은 4.8%에서 4.0%로 0.8%포인트 하락하는 선에서 막았다. 현대모비스 영업이익률이 같은 시기 7.2%서 5.5%로 1.7%포인트 낮아진 것보다 나은 수준이다.
글로비스도 역시 이번 실적과 함께 '완성차 공급 통합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 기반 종합 물류기업, 모빌리티와 인수합병(M&A) 기반 미래 신규사업 선도 기업'이라는 중장기 청사진을 제시했다. 2025년 매출 목표는 40조원 이상으로 제시했는데 작년 기준 16조4000억원인 기존 사업 매출을 최소 23조6000억원까지 끌어올리고, 모비스서 인수한 사업도 16조4000억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현대제철 경우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6% 늘어난 4조7861억원, 영업이익은 16.1% 감소한 2935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제철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현재 보유한 5.7%의 기존 모비스 주식 중 존속법인 주식을 대주주에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고 이후 적극적 주주환원책을 검토하겠다"고 지원사격을 했다.
지배구조 개편 이슈에서 벗어나 있는 현대위아의 경우 매출 1조7409억원에 영업손실 29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7% 감소했고 영업손익은 적자전환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매출 3조5382억원, 영업이익 2184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각각 전년동기 대비 14.5%, 10.5% 감소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정몽구 회장이 4.68%, 정의선 부회장이 11.72%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을 연결 종속회사로 두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현대건설 본체 부진이 현대엔지니어링보다 깊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