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2개월만에 결국 무산됐다. 개편안의 출발점이자 핵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주주총회를 불과 1주일여 앞둔 시점이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외국인 투자자들 비롯해 주주들의 심상찮은 민심(民心)을 거스를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그룹을 지탱해왔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나아가 정의선 부회장의 후계 승계 완성을 위한 시발점으로 삼으려던 계획도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현대모비스는 "이사회에서 분할합병 절차를 중단하고 현대글로비스와 분할합병계약 해제합의서를 체결했다"며 "오는 29일 개최예정이었던 임시주주총회도 철회키로 결의했다"고 21일 밝혔다. 현대글로비스도 같은 요지의 입장을 동시에 밝혔다.
모비스 측은 분할합병 전격 철회 결정 배경에 대해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반대 의견을 권고하고 그에 따른 주주들의 의견을 고려한 결과, 주주총회 특별결의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 및 분할합병의 거래종결 가능성이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분할합병은 상법 상 특별결의 사항으로 주총 출석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필요로 했다.
모비스는 이어 "내부의 신중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현재 제안된 분할합병방안의 보완 등을 포함해 재검토할 것"이라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방식이나 시기 등은 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모비스와 글로비스는 지난 3월28일 모비스 애프터서비스(A/S)부품사업부문과 모듈사업부문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합치는 분할합병 방안을 결의했다. 그룹 차원에서는 '기아차 → 모비스 → 현대차 → 기아차' 식으로 연결된 순환출조 구조를 해소하고 '대주주 → 모비스 → 완성차 → 개별 사업군'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려는 복안이 있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도 가능토록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이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에 나선뒤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 입장을 표면서 '캐스팅 보트'로 여겨지던 국민연금마저 현대차 방안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최근들어 흐릿해졌다. 결국 주총 표결 결과가 비관적으로 예측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 현대기아차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옥(자료: 현대차그룹) |
정의선 부회장은 이날 '구조개편 안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란 자료를 통해 "어떠한 구조개편 방안도 주주 분들과 시장의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주주 분들과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 분들이나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며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해 여러 의견과 평가를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하여 개선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사장도 대표이사 명의 '주주님들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번 사업구조 개편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했다"며 "더욱 적극적이고 겸허한 자세로 주주 및 시장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살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