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역대 최대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임원 승진폭을 확 줄였다. 지난해 최고경영진에 대한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뒀다. 그러면서도 성과에 따른 보상원칙을 재확인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책임진 김기남 대표이사 사장이 삼성전자 3명의 대표 중 유일하게 부회장을 달았고, 전체 임원 승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에서 나왔다.
삼성전자가 6일 실시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보면 반도체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전체 승진자 158명 중 80명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80명 가운데 12명은 직위 연한과 상관없이 발탁됐다.
반도체 고점 논란 속에서도 초격차 전략을 유지,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38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매출액으로는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통틀어 세계 1위였던 미국 인텔을 꺾고 2년 연속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성과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임원들의 거취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삼성전자의 전체 임원 승진자는 지난해 221명에서 이번에는 158명으로 30% 가량 줄었다. 이에 비해 DS부문은 99명에서 80명으로 20% 줄어드는데 그쳤다.
지난해 말 60대 이상 사장단 용퇴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인사폭 축소는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스마트폰과 소비자가전에 비해 반도체 쪽의 찬바람은 그나마 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기남(DS부문)·김현석(소비자가전)·고동진(IT·모바일) 3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김기남 사장을 부회장으로 '원포인트'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실적호조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성과주의 원칙은 다른 전자 계열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3분기에만 4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삼성전기는 임원 승진자가 지난해 14명에서 이번에는 15명으로 늘었다. 삼성SDI도 전지부문 성장에 힘입어 15명의 승진자를 냈다.
반면 중국발 LCD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36명의 승진자가 이번에는 22명으로 줄었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계열사에도 투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이번 인사를 보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기조 속에서 실시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이 부진했지만 회사 전체 실적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외형성장은 꾸준히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난해 7명이었던 사장단 승진자가 이번에는 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2015년 사장단 인사에서 김현석, 전영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가장 작은 폭의 인사다.
전자 계열사에 앞서 지난주 임원 인사를 실시한 금융 계열사에서도 CEO를 전원 유임시키며 변화폭을 줄였다.
반도체 호황이 정점을 지나고 미중 무역갈등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조직내 위기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문제,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 등 삼성으로선 민감한 현안이 쌓여있어 큰 폭의 승진인사를 실시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말 인사폭이 커 이번에는 조직 안정을 키워드로 삼은 것 아니겠냐"며 "눈 앞에 여러 변수가 보이는 상황에서 조직을 흔들어선 안된다고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