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도 전에 매출이 거의 1조원. 현대자동차가 새로 선보인 최상위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가 세우고 있는 기록이다. 지난달 29일부터 12월10일까지 약 2주간(영업일 기준 8일) 사전계약으로 팔린 게 2만506대다. 대당 4500만원으로 잡아 단순 계산하면 9200억여원이다.
▲ 팰리세이드 전조등과 수직으로 연결된 주간 주행등/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그야말로 선풍적 인기다. 지금 계약해도 내년 2월은 돼야 차를 받을 수 있단다. SUV 시장 판도가 바뀔 정도다. 중형 SUV를 사려하던 소비자들이 팰리세이드 앞에 줄을 서고 있다. 가장 긴장할 경쟁 차종은 '싼타페'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현대차 세단 최다 판매모델이 '아반떼'에서 '쏘나타'로, 다시 '그랜저'로 옮아갔듯, SUV서도 그런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지난 11일 팰리세이드 신차 매체 공개행사가 행사가 열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서, 또 여주시 강천면 세종천문대까지 왕복 150㎞ 구간을 달리며 팰리세이드를 살펴보고 또 타봤다. 시승에는 디젤 2.2 7인승 프레스티지 풀옵션 차량이 제공됐다.
#일단 뻔하지 않은 외모다. 호불호(好不好)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는 디자이너의 고집이 내비치는듯 하다.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은 "찍어낸 듯한 패밀리룩이 아니라 각 차급 모델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자는 것"이라고 했다.
첫 인상은 강인하고 웅장했다. 지난 6월 현대차가 공개한 디자인 콘셉트카 'HDC-2 그랜드마스터 콘셉트'가 양산차로 구현됐다. 현대차가 세우고자 한 디자인 방향성이 온전히 드러난다. 전장 4980㎜에 전폭 1975㎜, 전고 1750㎜로 원래 크지만 더 크다는 느낌을 부각시키는 디자인 요소가 많다.
▲ 전측면서 본 팰리세이드/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 지난 6월 부산모터쇼서 공개된 'HDC-2 그랜드마스터 콘셉트카'/사진=현대차 제공 |
앞모습은 입체감을 살려 더 대담하게 표현했다. 굵은 그물망 모양의 대형 캐스캐이딩(폭포수 모양) 그릴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기에 분리형 전조등과 수직으로 연결 된 주간주행등이 '강하다'는 느낌을 더한다. 더러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분위기도 난다"고 평한다. 무난하다기 보다는 개성이 뚜렷하다.
옆과 뒤도 수직적 직선으로 웅장한 덩치를 돋보이려 고민한 흔적이 많다. 전면부에서 입체적으로 이어지는 강렬함이 옆모습의 특징이라면 후면부는 넓고 안정적인 자세가 강조됐다. 외부 후사경(사이드미러)은 깃발이 펄럭이듯 양 옆을 뽀족하게 뽑아 시야를 더 넓게 확보하면서 달려 나가는 느낌도 더했다. 앞뒤에 지금껏의 모델보다 크게 박힌 엠블럼은 현대차의 자신감을 웅변했다.
▲ 팰리세이드 뒷모습/사진=현대차 제공 |
#속은 겉과 확연히 달랐다. 이 센터장 말마따나 '반전의 미'가 있다. 그는 "외관이 수직이라면 내부는 수평을 기본으로 삼아 안정감을 살렸다"고 했다. 동급 최장인 2900mm의 축간거리를 통해 넉넉한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공간을 세심한 기술로 꼼꼼하게 채웠다.
2m 가까운 전폭 덕에 운전석에 앉아서도 옆 동승석과 충분히 사적인 거리가 확보됐다. 공간의 넉넉함은 2열과 3열에서 더 증폭됐다. 2열은 독립적 개인 좌석에 무릎공간도 충분해 항공기 비즈니스 클래스 같은 느낌이 났다. 2열에는 통풍시트도 적용(7인승 전용)했다.
▲ 팰리세이드 동승석서 본 2~3열/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3열도 보조좌석 수준이 아니었다. 성인 셋은 무리여도 덩치 큰 어른 남자 둘이 어깨가 닿지 않을 만큼 넉넉했다. 10도 정도는 뒤로 젖혀져 장시간 승차 때도 무리가 없어보였다. 탈 때도 단추 하나만 누르면 2열 좌석이 앞으로 당겨지고 접혀 승하차가 쉬웠다. 3열을 접고 펴는 건 트렁크 옆면 버튼뿐 아니라 운전석 내비게이션 화면을 통해서도 가능했다.
시승차는 '네이비-웜그레이'라는 내장색상이 적용됐다. 대충 보면 검게 보일 정도의 짙은 남색과 밝은 회색 톤인데 안락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꽤 괜찮은 조합을 이뤘다.
▲ 현대차 엠블럼이 큼지막하게 박힌 운전대와 계기판 및 중앙 내비게이션/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 팰리세이드 네이비-웜그레이 내장재 바깥으로 보이는 외부 후사경(사이드 미러)/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도로 주행은 부드러웠다. 이 차에는 최고출력 202마력(ps), 최대토크(회전력) 45.0kgf.m의 'R2.2 e-VGT' 엔진이 탑재됐고, 전륜 8단 자동변속기가 물렸다. 시동이 걸렸나 싶게 조용했고 도로로 나섰을 때 엔진이나 노면 소음도 거슬림이 없었다. 디젤이 이정도면 가솔린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싶었다.
노면 충격을 저감하는 현가장치(서스펜션)는 딱딱하지 않았다. 속도방지턱이나 손상된 노면 위를 지날 때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베테랑 자동차 출입 기자인 동승 기자는 "앞뒤 좌우 균형이 잘 배분돼 차체가 큰 데도 출렁이거나 쏠리는 게 없는 듯하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 정도를 유지하며 달릴 때 엔진회전수(RPM)은 1500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진동도, 소음도 적었고 연비도 괜찮겠다 싶었다. 차로 변경을 위해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켰을 때 계기판 중앙에 차의 측면부를 비치는 화면이 떴는데, 이런 기능 덕에 큰 덩치에도 운전하기 쉽겠다고 여겨졌다.
▲ 시승 주행 중인 팰리세이드/사진=현대차 제공 |
▲ 팰리세이드 1열 중앙부에 설치된 버튼형 변속기와 주행모드 조작 다이얼 및 공조기 조작 버튼/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시승 반환점에는 '험로 주행 모드'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도 마련됐다. 모래, 눈길 등 지면상태에 따라 휠에 공급되는 회전력을 다르게 배분하는 기능이다. 깊이 20cm 넘어 뵈는 모래밭에서 운전대를 흔들며 주행해도 차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모노코크(차체 일체형)지만 험한 운전에도 차체 비틀림이 느껴지진 않았다.
#타보니 혼자나 둘이 타기는 아까운 차다. 적어도 3명, 많으면 6명이 함께 타야 팰리세이드 가치는 극대화한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들도 태우고 여행하기에 그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뭐가 아쉽더냐는 타사 기자 질문에 "내가 아직 아이가 없다는 점"이란 대답이 나왔을까.
▲ 2열 중앙부 공조기 등 조작장치와 USB 단자, 동승석 위치 조작 버튼/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여러 기능이 있지만 에어컨 바람이 승객에게 직접 닿지 않게 조절 가능한 '확산형 천장 송풍구(루프 에어벤트)', 차량 내엔진 소음을 역 위상의 음파를 쏴 줄이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ctive Noise Control)', 후석 동승자가 운전자와 편하게 이야기하거나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하는 '후석 대화모드'와 '후석 취침모드'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1~3열에 각 2개씩 총 6개의 USB 충전구를 갖추고, 총 16개의 컵 홀더를 배치해 편리함을 더했다. 누구 말처럼 어디만 가자고 하면 맨 뒷좌석에 콕 처박혀 헤드폰을 쓴다는 사춘기 딸도 편안해할만 하겠다 싶었다. 백미는 1열 중앙 천정부에 있다. 보통 썬글래스 수납공간이 있는 곳인데 누르면 뒷좌석을 볼 수 있는 실내 후사경이 나온다. 운전자 본인보다 가족을 더 살피게 하려는 설계자의 마음이 읽힌다.
▲ 내부 후사경(룸미러) 위 설치된 차내 전용 후사경/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 팰리세이드 2~3열 사이 설치된 천정 공조기 통풍구 및 후석 대화 스피커/사진=윤도진 기자 spoon504@ |
#가격은 솔깃했다. 엄청난 가성비의 중국 샤오미 제품을 두고 '대륙의 실수'라 하듯, '현대차의 실수'라 할 만하다. 사전계약 실적만 봐도 200만원만 더 붙였으면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문이 400억원 더 남았을 거란 말도 들렸다. '지금은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할 때'라는 최근 현대차의 위기감이 가격에서 느껴졌다. 가격 책정은 이 차의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더 관건일 듯하다.
풀옵션을 채운 시승차량은 4904만원이었다. 공인 복합연비는 20인치 전륜구동 7인승 기준 리터(ℓ)당 12km다. 시승차는 네 바퀴의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전자식 4륜 구동(AWD) 시스템인 현대차 '에이치트랙(HTRAC)'이 장착됐는데 실연비로 ℓ당 11.3km가 찍혔다.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면서도 그 공간을 가족과도 공유하고 싶은, 소년시절 감성을 그리워하며 어느덧 40대가 된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는 차. 바로 '팰리세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