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로 소송 중인 SK이노베션 대상으로 조기패소 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를 요청했다. ITC가 이를 받아들이면 원고와 피고가 각각 증거를 제출하는 증거개시절차(디스커버리) 다음 단계인 예비결정을 거치지 않고 피고(SK이노베이션)에게 패소판결이 내려진다.
13일(현지시간) ITC 홈페이지에는 LG화학이 제출한 67페이지 분량 요청서와 94개 증거목록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 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ITC가 두 요구안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승인한다면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하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미국 수입금지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 증거인멸을 저질렀다는 구체적 사례도 제시했다.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요청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소송제기 다음날 "[긴급]LG화학 소송 건 관련"이란 제목의 전자메일에 "각자 PC, 보관메일함, 팀룸에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랍니다"는 내용을 담아 임직원에게 발송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ITC가 지시한 포렌식 조사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이 980개 문서가 정리된 특정 엑셀의 대다수 시트를 상대측 전문가를 배제하고 은밀히 진행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LG화학에 따르면 ITC는 LG화학측 전문가도 참석해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깜깜이 포렌식 작업을 법정 모독행위로 보고 있다.
포렌식은 컴퓨터, 휴대폰 등 디지털 기록 매체에서 삭제된 정보를 복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디지털 조사다.
LG화학 관계자는 "공정한 소송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되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및 법정모독 행위가 드러났다"며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다고 판단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은 "여론전에 의지해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사와 달리 소송에 정정당당하고 충실하게 대응하는 중"이라며 짧은 입장문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