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올해 3분기 40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작년 4분기부터 이어진 적자의 골은 이번에 더 깊어졌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경기 침체까지 겹친 탓이다. 2022년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 부담에 재무건전성도 불안하다.
불황이 최소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롯데케미칼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투자 축소 △해외법인 활용 등을 통해 현금 마련에 나섰고 신동빈 회장 등 화학군 계열사 임원들이 이달부터 급여 일부를 반납하기로 했다.
내실없는 성장
올 3분기 롯데케미칼은 연결기준 영업손실 4136억원을 냈다. 4개 분기 연속 적자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이자 증권가 전망치 대비 2500억원 가량 밑도는 부진한 성적표다.
이 기간 매출은 5조200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6% 늘었다. 내실없는 성장을 한 셈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요 회복 지연과 환율하락으로 제품 스프레드가 하락했고 해외 자회사 부분보수로 일회성 비용이 늘었다. 해상운임비 부담도 컸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초화학'이 부진했다.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LC Titan △LC USA △롯데GS화학 등의 실적이 포함된 기초화학 부문의 지난 3분기 영업손실은 3650억원에 달했다.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에 경쟁력이 떨어지면서다.
무차입 경영이었는데…
재무건전성 지표는 나쁘지는 않다. 지난 9월 기준 부채비율(부채로 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75.4%로, 적정수준(200% 이하)을 유지하고 있다. 순차입금(현금을 제외한 빚)을 자본로 나눈 비율인 순차입금비율은 36.1%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무차입 경영을 유지했던 탄탄했던 과거 재무여건과 비교하면 흐름이 좋지 않다. 영업으로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이자 등 부담은 늘고 있어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순차입금 규모는 7조원대를 넘어섰다. 2022년 말 사실상 '무차입 경영'이 깨진 이래 순차입금 규모는 △2022년 말 2조6045억원 △2023년 말 6조1036억원 △2024년 6월 말 7조545억원 등으로 늘었다.
빚 늘면서 이자부담도 늘었다. 롯데케미칼 금융비용은 2020년 1000억원대에서 2023년 4700억원으로 치솟았다. 올 상반기도 2100억원에 이르렀다.
'돈을 잘 버는지'를 단적으로 의미하는 잉여현금흐름(FCF)도 흐름이 좋지 않다. FCF는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유·무형자산에 재투자하고 남은 돈을 뜻한다. 202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2년 6개월여간 마이너스가 이어지는 추세다.
탄탄했던 롯데케미칼 재무구조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22년부터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10월 동박 전문 기업 당시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를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롯데케미칼은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1조3000억원을 차입했다.
회장도 급여 반납…현금 모으자
업황 회복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는 롯데케미칼의 분기별 흑자 가능성을 내년 하반기로 점친다.
롯데케미칼은 우선 투자 속도를 조절,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지난 7일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롯데케미칼은 "내년 시설투자(CAPEX) 규모는 약 1조7000억원"이라며 "올해(3조원) 대비 비교해 크게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투자비만 5조원대인 인도네시아 석화 사업 '라인 프로젝트'는 올해 마무리된다.
해외 자회사 2곳의 지분 일부를 매각해 총 1조4000억원 자금 조달도 추진한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내 EG(에틸렌글리콜) 생산법인인 LCLA의 지분 40%를 매각해 연내 6600억원을 조달할 방침이다. 이번 거래는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내년 중 인도네시아 법인인 LCI의 지분도 활용해 약 7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 롯데 화학군 계열사 임원들은 급여 일부를 이달부터 자진 반납한다. 반납 폭은 롯데지주 임원은 20~30%, 롯데 화학군 계열사 임원은 10~30%다.
급여 반납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동참한다. 신 회장은 올 상반기 국내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재계 총수이다. 그는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각사 대표이사를 맡은 만큼 양측 모두에서 급여 일부를 반납할 예정이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신 회장은 롯데지주로부터 급여 20억원·상여 22억원, 롯데케미칼에서 급여 20억원 등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단순 계산 시, 신 회장은 양사에 월간 최대 1억원씩을 반납할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