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또한번 분할합병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이번 정정 신고서가 예정대로 효력이 발생해야만 내달 임시주주총회를 무사히 열 수 있다. 앞서 두산은 금감원으로부터 두 차례 신고서 정정을 요구받은 바 있다.
두산은 지난 7월 처음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한 이후 로보틱스와 밥캣 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하지 않기로 하고, 분할합병비율을 조정하는 등 기존 안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금감원이 콕 집어 지적한 에너빌리티의 신설법인의 미래가치 산정방식은 기존 시가기준 모델을 고수했다.
금감원에서는 가치 평가방식을 직접 제시하는 것은 감독당국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도, 시가기준 모델의 채택 근거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신고서 정정 데드라인 6일 남겨둔 두산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는 12일 오후 합병 관련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번 신고서는 회사가 스스로 정정한 횟수까지 합쳐 6번째 신고서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달 30일 효력발생 기일을 코앞에 두고 신고서를 자진 정정키로 했다. 이후 외부평가기관을 추가로 선정하고 3분기 실적과 재무상황을 업데이트했다.
두산그룹은 내달 12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이번 신고서를 반드시 통과시켜야만 한다. 주총 2주 전 까지는 소집공고를 내야하는데, 신고서의 효력발생까지 걸리는 시간이 7영업일인 점을 고려한다면 11월28일 전에는 금감원 심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15일 지배구조 개편안을 처음 공개했다. 당시 발표한 개편안은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을 떼어내 로보틱스에 붙인 후(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밥캣을 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만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시장에선 곧바로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로보틱스 간 합병비율, 로보틱스-밥캣의 주식교환 비율 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 사이에선 알짜회사인 밥캣은 저평가된 반면 적자회사인 로보틱스는 고평가됐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결국 금감원도 논란의 중심에 선 내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신고서 정정을 지시했다.
시가기준 방식 유지…당국, 절충안 받아들일까
이에 두산은 절충안을 내놨다. 우선 로보틱스-밥캣 간 포괄적 주식교환과 추가합병을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로보틱스 간 분할합병 비율도 1대 0.0315에서 1대 0.0432로 높였다. 분할합병비율은 에너빌리티에서 신설법인(밥캣 지분 보유)을 인적분할하는 비율과 로보틱스-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 간 합병비율을 곱한 값이다. 기존 비율 상으론 에너빌리티를 100주 보유한 주주는 로보틱스 주식을 3.15주 받는다. 한편, 새로운 비율을 적용하면 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는다. 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선 더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비율이 높아진 건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매길 때 밥캣 지분 가치에 43.7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산하면서다. 밥캣 지분을 떠가는 에너빌리티의 분할신설법인은 비상장회사다. 따라서 현재 자산가치와 미래 수익가치를 1대 1.5의 비율로 가중평균해 이 법인의 합병가액을 매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점은 금감원이 지적한 합병비율 산정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당초 두산은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밥캣의 주가로만 평가했는데, 금감원은 이 방식을 채택한 근거가 미흡하다고 봤다. 시장에서 흔히 활용하는 현금흐름할인법(미래 현금유입액을 측정한 후 할인율을 적용하는 방식)과 배당할인법(예상되는 배당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방식)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라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두산은 수 차례 신고서를 정정하면서도 시가기준 평가 방식을 유지했다. 분할신설법인이 별도의 사업을 영위하지 않은 사실상 지주회사에 가깝기 때문에 자회사(밥캣) 지분 가치 즉, 시가로 매기는게 적합하다는 주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두산은 최근 제출한 신고서에서 현금흐름할인법 배당할인모형을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금흐름할인법 또는 배당할인법 적용시 미래의 매출 및 영업이익의 추정 등을 포함한 많은 가정사항들이 적용돼 평가인이 활용하는 지표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질 수 있다"며 "현금흐름할인법 또는 배당할인법에 따른 결과값을 근거로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부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밝혔다.
한편, 두산은 최근 이촌회계법인과 우리회계법인을 외부 평가법인으로 추가 선정해 합병가액에 대한 검토를 받았다. 원래는 안진회계법인이 혼자 합병가액 산정 평가를 맡았는데, 이 회계법인이 두산로보틱스의 2023년도 감사를 맡았던 터라 이해상충 우려가 있다는 금감원의 지적사항을 받아들인 것이다.
시장에선 금감원이 해당 절충안을 받아들일지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다. 금감원은 두산 사태와 관련 수익가치 산정 방식의 채택 근거를 꼼꼼히 살피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회계부문 부원장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시가에 프리미엄을 더하는 것 외에 여러 방법이 있지만,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고 할 수 없다"며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두산에 대한 시장 관심도가 이전보다 낮아진 마당에 금감원이 추가로 개입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증시가 다 같이 무너지면서 이전보다 두산을 겨냥한 분노의 강도는 누그러진 편"이라며 "여전히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긴 하지만 이미 외국인이나 기관 등 투자자들이 두산 계열사 보유 비중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변화한 센티멘트(시장심리)를 고려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