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후폭풍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집어삼켰다. 이 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상장 자회사 두산밥캣을 인적분할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로 이전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했지만, 비상계엄 여파에 주가가 급락하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은 금융당국의 문턱에 걸려 1차 계획이 좌절된 이후 느닷없는 정부의 비상계엄 여파에 2차 계획마저 좌초됐다.
10일 두산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 절차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지난 7월 이 회사 이사회가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시키는 것을 결정한 지 5개월 만이다. 분할합병 안건이 상정되는 오는 12일 임시 주주총회도 취소됐다.
계획이 무산된 배경에는 급락한 주가가 있다. 지난 3일 2만1150원에 거래되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이달 10일 1만7189원까지 급락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여파다. 비상계엄은 지난 4일 주식시장이 개장되기 전에 해제됐지만 주가 급락은 막지 못했다. 단기간 내에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가격인 2만890원보다 떨어졌다.
이번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는 자신의 주식을 2만890원에 사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할 수 있는데, 주가 급락으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회사 측은 주식매수청구 총액이 6000억원을 넘어서면 이번 분할합병을 해제할 계획이었다.
이날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는 "갑작스러운 외부환경 변화로 촉발된 시장 혼란으로 주가가 큰폭으로 하락하면서 임시 주총을 철회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현 상황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회사 역시 당장 분할합병 철회와 관련해 대안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적기에 투자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두산에너빌리티의 계획도 백지화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비영업자산을 정리해 1조원 이상의 투자여력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최근 박 대표는 주주 서한을 통해 "가스터빈 투자, SMR(소형모듈원전) 소재 확보, 대형원전 케파 확보 등을 위해 매년 최소 5000억~6000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적기에 신속한 투자가 진행됐을 때 비로소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비상계엄 여파로 무산됐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은 험난했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대주주에 유리하다는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힘을 얻자 금융감독원이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출한 분할합병 정정신고서에 퇴짜를 놨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 정정신고서를 6번이나 고쳤다. 결국 두산은 주주의 이익을 늘린 지배구조 개편 '플랜B'를 내놓으며, 금융당국 문턱을 간신히 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에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