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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에 선 CEO, 말에서 묻어나는 '팬데믹 공포'

  • 2020.03.20(금) 09:13

성수기 놓친 가전…초기판촉 망친 휴대폰
매장 닫고 공장 쉬는 車 '겉보다 더 쓰린 속'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수그러들고 있지만 세계는 이제 시작하고 있다. 유통이나 소비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칠 지는 아직 파악을 못했다.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대비할 것이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 사장)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주주들 앞에 서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 말 속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대유행)' 공포가 묻어나고 있다. 주식회사의 잔칫날 같은 자리여서 심각함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저마다 간단치 않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발언 뒤에 깔아두고 있다.

지난 3월18일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1기 정기주주총회.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난 18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김현석 사장의 위 발언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초기에는 중국에서 부품 문제가 일부 있었지만 현재는 전혀 생산에 차질이 없다"면서도 가전제품 판매의 종착인 소비단계 영향에 대해서는 '파악중'이라는 정도로 말을 아꼈다.

이 같은 발언 배경에는 코로나 확산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판매 차질 상황이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남미 페루 등지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이번 주들어 일시 폐쇄한 상태다.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 주요 매장도 일부 영업을 중단했거나, 개장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입학과 결혼 등이 많은 3월은 전통적인 가전 성수기이지만 건조기, 공기청정기, 의류관리기 등 아직 매출 비중이 작은 신가전류외에는 반토막 수준"이라며 "온라인 구매가 있다고는 하지만 매장 판매에 비하면 저가형 소비여서 수익성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사업도 마찬가지다. IT·모바일(IM) 부문장인 고동진 사장은 "스마트폰 시장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정도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휴대폰 업계에서는 올해 주요 스마트폰 업체 매출이 20~30%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이미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초 '갤럭시S20'과 폴더블 스마트폰 'Z플립'을 새로 내놓고 초기 판촉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주총 하루 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찾은 것 역시 불확실성이 유례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힘들겠지만 잠시도 멈추면 안된다. 신중하되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넘어서자"고 강조하며 경영진들에게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지혜'를 주문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삼성 갤럭시 언팩 2020'을 열어 '갤럭시 S20'과 폴더블폰 'Z플립'을 공개한 이튿날인 지난 2월12일 서울 서초 삼성전자 홍보관 딜라이트에 전시된 해당 제품을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자동차업계도 주총에서 드러낸 것보다 속이 더 썩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주주총회 연단에서 선 이원희 사장은 "미중 무역갈등 완화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세계적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정도로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실상은 더 긴박하다.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으로 생산차질과 수요급감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이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지역에 이어 사업적 손실이 점증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의 경우 2월 승용차 판매량(중국자동차공업협회 집계)이 22만4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86.1% 줄었다.

이는 세계 완성차 업계가 함께 맞닥뜨린 암울한 현실이다.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공장을 2~3주 가동 중단한 데 이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미국 포드, 일본 토요타 등도 각각 유럽 생산기지 위주의 공장 일시폐쇄를 결정했다. 미국의 경우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이 감산을 합의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공장 가동과 부품 물류, 딜러 매장 운영 등 모든 단계에서 심각한 차질이 있다는 것을 이미 중국에서 경험했다"며 "공급과잉과 친환경차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에 코로나 팬데믹 상황까지 겹치게 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구조조정이 더욱 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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