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지난 9일부터 상대국 국민의 자국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한국 정부가 처음 해당 조치를 발표한 일본에 대해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강하게 비판하자 일본 측은 “사전 통보했다”며 정반대 목소리를 냈다. 양국은 어떤 조치를 취했길래 서로가 날선 공방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일까.
◇ 일본, '한국인 관광객 사실상 입국금지'
한국 국민은 지난 9일부터 비자 없이 일본을 방문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지난 5일 우리 국민에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후속조치다. 그간 우리 국민은 90일 이내 현지 관광 목적일 경우 주한 일본 대사관 등에서 비자를 발급 받지 않아도 현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우리 국민에 기존 발급된 비자 효력도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고, 신규 비자 발급 심사도 까다롭게 진행한다고 알렸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입국 전 뿐만 아니라 그후에도 한국인을 부분적으로 통제한다. 한국인은 일본에 입국할 경우 지정 장소에서 14일간 격리돼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입국자 본인이 예약한 숙소, 자택, 친인척 집 등에서 자가 격리에 들어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인 입국자는 해당 장소까지 이동할 때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과 버스 등 공공교통기관은 이용할 수 없다. 렌트카나 자가용으로 직접 이동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중국인에 대해서도 해당 조치를 시행 중이다.
사실상 기업체나 공공기관 등에서 업무 목적이 없는 일반 관광객에게는 입국금지 조처나 다름없다. 일본에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사람이 2주 격리기간을 거친 후 3주차부터 여행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서다. 실제 주한 일본대사관은 이달까지는 관광 목적 등의 비자신청 접수는 받지만 실제 발급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추세에 따라 다음달부터 비자 발급에 들어갈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결국 이번 일본 정부 조치는 한국 국민 전반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실시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국내 일부 지역 체류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입국금지를 실시해 왔다. 대상 지역은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청도군, 경산시, 안동시, 영천시, 칠곡군 등 9곳이다.
◇ 한국, 일본보다 하늘길 '덜 좁혀'
한국 정부도 일본과 똑같이 상대국 국민에 대해 9일부터 무비자 입국 중단, 비자 효력 정지로 맞대응하고 있다. 다만 일본인이 입국하기 전부터 단계적 관리조치를 취하며, 입국 허용범위 등에서 다소 유연한 접근법을 취했다.
우선 한국 정부는 비자 발급 신청자가 건강상태확인서를 직접 자필로 써서 내게 했다. 오한,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증상 보유자를 사전에 걸러내기 위해서다. 또 법무부는 탑승자 사전확인제도, 현지 항공사와 선사 탑승권 발권, 국내 입국 심사 단계 3단계로 일본 입국자를 관리한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9일자로 일본을 특별입국절차 적용 국가로 선정했다. 일본에서 오는 입국자들은 현지인에 더해 외국인까지 발열, 호흡기 증상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의심 증상이 발견되면 공항 내 격리시설에 격리된다. 또 한국 입국자는 건강상태 질문서를 내고 국내 주소, 연락처를 제출해야 한다.
이밖에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으로 체온 등 건강상태를 매일 보고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인에 대해 물샐틈 없는 봉쇄를 한 것과 비교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입국길을 상대적으로 덜 좁혔다.
◇ 강대강 격돌, ‘속깊은 앙금’
양국의 상대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는 코로나19 사태 속 전례없이 강하다. 그간 한국과 일본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해당 국가 입국자 전반이 하늘길을 넘어오는 것을 제재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간 해외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망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그나마 입국금지 조치를 실시한 곳은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이 유일하다. 14일 이내 후베이성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 있는 외국인이 대상이다. 그밖에 이번에 추가된 일본에 더해 홍콩, 마카오, 이탈리아, 이란 , 프랑스 등 11개 국가 입국자가 한국에 발을 들였을 때 특별입국절차로만 제한적으로 관리했다. 특정 국가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입국 전부터 강하게 제한한 것은 일본이 처음이다.
일본 역시 그간 개별 국가 입국자에 대한 제한조치를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대구 등 한국의 9개 지역과 중국 후베이성과 저장성 2곳, 이란 콤주·테헤란주·기란주 3곳의 14일내 체류자에 대해서만 입국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한국 외 다른 국가 전체를 방역망에 넣은 것은 지난 산마리노 공화국이 유일하다. 일본 정부는 11일(현지시간)부터 산마리노 체류자에 대해 입국금지 조치를 시행 중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쌓였던 앙금이 이번 양국 조치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를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두 국가는 첨예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하는 등 맞불을 놨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정부는 일부 제품 수출규제 완화,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발표했지만 양극간 외교 간극은 여전히 넓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