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다툼 중인 조원태-조현아 남매가 항공기 리베이트 의혹으로 고발 조치되면서 당장 나흘 앞으로 다가온 한진그룹 주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경영진의 위법성을 깐깐하게 보고 있는 한진칼 주총의 캐스팅 보트이자, 대한항공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관전 포인트다.
다만 이제 막 고발 조치가 이뤄지는 등 아직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만큼, 리베이트 의혹이 이번 한진그룹 주총 표 대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남매에 대한 리베이트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이달 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였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은 프랑스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공개하며 "'에어버스'라는 유럽의 항공기 제작 회사가 대한항공을 포함한 전 세계 유수의 항공사에 항공기를 납품할 때 리베이트를 줬다는 내용이 나와있다"고 폭로했다.
채 의원에 따르면 에어버스는 대한항공과 1996년부터 2000년까지 10대의 A330항공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에어버스가 성명불상의 대한항공 전직 고위 임원에게 1500만 달러 지급을 약속했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차례에 걸쳐 총 174억원의 리베이트를 전달했다.
채 의원 측은 당시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모두 대한항공의 등기이사였던 만큼, 리베이트 수수행위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조 회장은 당시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에어버스 구매에 직접 관여한 만큼 리베이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채의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합세해 지난 18일자로 두 남매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이다. 리베이트로 받은 자금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들어갔다고 본 것이다.
조 전 부사장과 조 회장 측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대의 연루의혹을 우회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항공기 리베이트와 관련해 어떤 불법적 의사결정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며 "이번과 같은 항공기 구매 리베이트 건은 있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과 손 잡은 주주연합측도 자료를 내고 "조 회장은 항공기 도입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진행하는 위치"라며 "리베이트 사건 직후에도 에어버스 항공기 도입은 물론 2019년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12조원 상당의 '보잉 878' 항공기 도입을 결정했다"며 조 회장을 이번 리베이트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
조 회장 측은 수차례의 해명자료를 내고, 본인을 포함한 현 경영진은 에어버스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어떠한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과거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최근 프랑스 에어버스 등에 확인을 요청했고, 이와 별도로 배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한항공은 2018년에만 11개 수사기관으로부터 18번이 넘는 압수수색과, 수십회에 달하는 계좌추적 등 고강도의 수사를 받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항공기 거래와 관련한 위법 사실은 단 한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근거없이 현 경영진의 명예를 훼손시켜 회사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민·형사상 조치도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003년 한진그룹에 입사했기 때문에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졌던 시기의 내용은 전혀 모른다"며 "A330 도입 계약 시기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재직 중이었다"며 조 전 부사장과의 연루의혹을 제기했다.
양측의 이같은 날선 반응은 그룹 경영권을 가를 한진칼 주총과 리베이트 논란의 핵심인 대한항공 주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한진칼의 경우 조 회장 측과 주주연합 측의 지분 격차가 1.47%에 불과해 양측 모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의혹만으로도 표심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진칼 주총의 캐스팅 보트이자, 대한항공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한진칼 지분 2.9%, 대한항공 지분 11.09%)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한진칼 주총만 해도 국민연금이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주요 주주간 지분 경쟁의 우위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KCGS)는 조 회장의 연임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이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경영진의 위법성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중점관리사안'으로 ▲지나치게 낮은 기업의 배당정책 ▲지나치게 높은 임원 보수 ▲횡령·배임·부당지원·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 ▲지속해서 반대의결권 행사 사안 등을 제시했다.
이중 법령 위반과 관련, 1, 2심을 거쳐 3심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업가치나 주주권익이 훼손됐다고 판단되면,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이번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 법적 판단에 앞서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측이 이해 관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리베이트 의혹이 오는 27일 열리는 한진칼, 대한항공 주총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검찰 조사 초기 단계로, 기소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데다 현재 불거진 사안만으로 두 남매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두 남매 모두 피고된 사안이고, 아직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주총 표심의 잣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 또한 리베이트 의혹을 예의주시 하겠지만, 직접적인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섣불리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